▲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좋은 책을 읽으면 어느 순간 자신이 리셋(reset)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서적인 불순물들이 걸러지고, 그것에서 기인한 여러 가지 심리적 오류들이 사라지면서 ‘초기 상태’의 어떤 신선한 상태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보통은 그것이 ‘자기 부정(自己否定)의 카타르시스’의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책을 내 내면의 ‘그림자’를 비추어 보는 ‘검은 거울’로 활용할 줄 알아야 그런 행운도 만날 수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을 위기로부터 구한 윈스턴 처칠의 이야기를 담은 한 책이 제게 그런 ‘검은 거울의 행운’을 안겨줍니다.



‘....바로 이런(내면에 고착된 자기 자신에 대한) 적대감을 처리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우울증 환자들은 외부세계에서 적을 찾아낸다. 정당하게 분노를 퍼부을 수 있는 적을 찾는 게 큰 위로가 된다. 윈스턴 처칠은 전쟁광이라는 비난을 곧잘 받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과의 싸움이 처칠에게 감정적으로 강한 소구력(訴求力)을 가졌고, 마침내 그가 완전한 적이라고 생각한 적과 맞닥뜨렸을 때 그에게 엄청난 활력과 해방감이 제공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완전한 적이 바로 히틀러였다.(앤서니 스토,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처칠에게는 심각한 우울증이 있었는데 집안의 내림병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런 유전적 요인에다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방치된 안 좋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기숙학교로 보내졌습니다. 그런 유년 시절이 그의 성격 형성에 나쁜 영향을 미쳐 자라면서 환경과의 불화가 잦았고 본인은 불행감과 늘 함께해야 했습니다. 자존감 결여에서 오는 정체성 위기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약점에 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발판 삼아 역사에 남을 위업을 쌓습니다. 나라도 구하고 자신도 구합니다.

제가 매달 받아보는 이웃 나라의 검도잡지 표지에서 ‘좋은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良い經驗が人をつくる)’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이 검도 수련을 통해 스스로 역경을 극복해나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행사의 주인공인 아이들의 소감 발표 내용을 주로 싣고 있었지만 그 행사의 속 취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모범을 많이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의 ‘길러주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어려서 좋은 경험을 많이 축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런 아이가 자라서 모범적인 어른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성장 환경만이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인간의 행불행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국 주체의 내부적인 요인입니다.

처칠은 자신의 병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감추지 않고 ‘검은 개(Black Dog)’라고 부르면서 객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뒤로 ‘검은 개’는 우울증을 가리키는 의학 용어가 되었고요. 그는 자신의 ‘검은 개’를 애면글면 평생 데리고 살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나는 많은 것을 이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단다”라고 딸들에게 남긴 말에서도 재발성 우울증의 짙은 그림자를 봅니다. 역사적 위인의 그런 자기부정을 보면서, 누구 하나 불쌍치 않은 인간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절망을 딛고, 병마저 자신을 ‘길러 주는’ 방책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에서 한 가닥 희망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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