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 편향에 따른 편 가르기

▲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
매년 발표되는 북한 신년사는 일종의 국정운영지침이다.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분야를 망라한 대내 정책과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등을 포함한 대외 관계로 구성된다. 폐쇄 사회인 북한을 읽을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신년사는 북한의 정책 방향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요한 문건으로 간주된다. 특히 2019년 신년사는 북한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중요한 시기에 발표되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대외 관계와 관련하여 지극히 양분된 신년사 해석을 내놓았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관계 확대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환영한다”는 긍정 일색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반면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2018년 북한 신년사를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이고 미국과 국제사회를 협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북한의 핵 포기 의지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차에 기인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몇몇 내용에 적용해 보면 “더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구절을 북한이 핵포기 의지가 있다는 시각에서 볼 경우 핵무기 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매우 전향적인 비핵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하지 않았다는 인식을 갖고 보면 기존 핵보유국이 선포하는 핵무기의 시험, 사용, 전파 금지 원칙을 북한도 천명한 것으로 북한의 핵 보유 선포로 읽힌다.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모습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발언도 핵 포기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마지못한 선택인 새로운 길에 접어들지 않도록 미국이 선제적으로 상응조치를 취해야한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북한 비핵화 결단을 의심할 경우 동 발언은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협박이다.

신년사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이 북한 문제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강화될수록 객관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는 사라지고 소모적이며 파괴적인 편 가르기만 남는다는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섣부른 낙관론과 지나친 비관론을 지양하고 북한의 전향적인 비핵화 조치를 추동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진정성과 의지가 있는지를 묻기 보다는 상대가 한 말과 행동 중 의미 있는 것에 주목하여 실천하게 해야 한다. 논란이 되었던 신년사 구절로 다시 돌아가면 북한이 처음으로 “더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한 것은 사실이므로 북한이 이를 이행토록 하고 검증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길”의 경우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보상만 논할 것이 아니라 북한이 비핵(非核) 선경(先經) 노선으로 논란의 여지없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도록 하는 복합적 접근으로 연계해야 한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중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간이 흐른다면 한국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북한과의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낭비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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