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얼을 돌리고 열쇠를 젖힌다
이중으로 잠긴 비밀들의 입이 굳어 있다
이끼 낀 기억들을 한 장씩 넘기면서
기억되지 못한 것들의 끊어진 마디를 찾는다
토막으로 퇴화된 비밀들의 매듭은 감겨 있었고
기억은 추달에도 끝내 실토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오래 너무 멀리 와 있었다
간혹 점멸하는 불빛이 유성처럼 스치긴 하지만
신화는 늘 아득한 구전이다
잊지 못하는 것들의 몸부림에도
녹슨 단절은 이력을 전송하지 못하고
비밀의 문을 다시 이중으로 채운다
빗장의 이빨이
깨어나지 못하는 살점을 다시 물고 있다





<감상> 과거의 기억들, 비밀들은 모두 녹슨 캐비닛 속에 들어 있다. 이중으로 잠긴 문을 열고 들춰내려 하지만 실토하지 않는다. 한 때 지나간 시절 인연이므로 매듭을 풀 수가 없다. 특히 그리운 사람을 잊지 못하므로 시인의 몸부림에도 그 기억들은 전송되지 않는다. 빗장의 이빨이 더욱 기억의 살점을 깨물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아름다운 기억과 비밀들을 차곡차곡 캐비닛 속에 넣으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캐비닛마저 이내 방치되고 말 것이다. 얼마나 사람 사이의 관계가 견고하지 않고 엉성한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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