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는 3권분립을 뼈대로 정부 조직을 나눈다. 그중에서도 사법권은 집행권도, 예산권도 없어 오직 재판만 한다. 그래서 3권 중에서 가장 취약하다. 6·25 부산 피난 시절, 경찰 검문에 대법관들이 걸렸다. “우리는 대법원에 있는 사람들이오.”라고 하자 경찰이 물었다. “대법원이 어디 있는 절입니까? 우리는 부산에 그런 절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당시 일반 국민에게 미미한 존재로 각인돼 있었던 대법원의 위상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다.

이런 속에서 대법원과 사법부가 입법, 행정에 대해 뚜렷한 위상을 정립하고, 국민에게 나름의 존재감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은 김병로 대법원장의 공적이 크다. 사법부의 독립은 주로 행정부, 그 중에서도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대통령과의 갈등관계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김병로 대법원장은 사법권 독립을 지키기 위해 행정, 입법부를 비판하고 때로는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의 정권 장악과 정권 연장을 위한 여러 책동이 노골화 되면서 때로는 헌법 파괴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럴 때 김 대법원장은 수동적, 방관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헌법을 직접 침해하는 단계에 이르면 헌법 및 법률해석을 통해 권력남용의 반민주성과 반 헌법성을 극명하게 밝혔다. 그의 발언들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엄청난 반응과 위력을 발휘했다. 그로 인해 권력남용을 억제하는데 상당한 효력을 나타냈다.

이승만의 직선제 개헌을 위한 부산 정치파동 직후 김병로 대법원장은 법관들에게 사법권 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폭군적 집권자가 마치 정당한 법에 의거한 행동인 것처럼 형식을 취해 입법기관을 강요하거나 국민의 의사에 따르는 것처럼 조작하는 수법은 민주 법치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를 억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법부의 독립 뿐이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유죄를 선고, 법정 구속 시킨 판사를 향해 집권여당의 무차별 협박공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다 마지못해 “적절치 않다”고 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소극적 대응에 국민이 실망하고 있다. 사법권 독립에 온 몸을 던진 김병로 선배에게 부끄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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