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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한 번 본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평론가들이 즐겨 쓰는 말로서 일리 있는 충고라 여긴다. 근자에 재차 관람한 ‘쉰들러 리스트’도 그랬다. 저런 내용과 대사가 있었든가 금시초문인 듯 여겨지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치 당원이자 군수품 제조업자인 주인공. 독일군 장교와 친분을 쌓는 수완으로 수용소 유대인 노동력을 동원해 떼돈을 번다. 그는 유흥과 접대에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군납 공장을 확장한다. 이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신의 재력을 뇌물로 사용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될 유대인 1100명을 빼돌리는 내용.

처절한 전쟁의 참상과 일확천금 기회를 제공하는 전시 산업의 다른 얼굴, 그리고 금력이 결부된 권력의 타락과 단추가 잘못 끼인 인생의 반전을 보여준다. 비극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이다. 출발한 열차도 다시 세우는 연줄을 가진 사업가. 추악한 돈으로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개과천선 실화.

쉰들러는 모든 재산을 털어 구출한 유대인을 고향의 포탄 공장으로 데려간다. 불량 무기 생산으로 불합격 통지를 받으나 개의치 않는다. 성능이 우수해 살상 도구로 쓰이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드라마 포청천은 “작두를 대령하라”는 추상같은 호령으로 유명하다. 그 주인공이 명판관이자 청백리인 ‘포증’이다. 푸른 하늘에 억울함을 호소하듯 백성들은 그를 찾았고 포청천이라 불렀다. 쉰여덟 살에 송나라 수도 카이펑의 행정장관인 부윤으로 근무했다. 황가의 친인척과 권문세족이 즐비했기에 처신이 만만찮았을 터이다.

당시 ‘포탄’이란 유행어가 돌았다. 대포로 쏘는 포탄이 아니라 ‘포증의 탄핵’이란 뜻의 줄임말로 거침없는 비판을 의미했다. 탐관오리를 가리켜 ‘포탄이 있다’고 칭했고, 청렴결백한 관리를 ‘포탄이 없다’고 평했다. 권세가는 두려워서 나쁜 짓을 삼갔다고 전한다. 일찍이 부패와의 전쟁을 수행한 공직자.

참고로 송나라 시절엔 작두로 참수하는 제도가 없었다. 후대의 문학 작품에 창작된 이미지. 포증의 검은 얼굴 역시 작가의 상상에서 나왔다. 실제론 하얀 편이었다고 한다. 키는 165㎝ 정도로 크지 않았다. 발굴된 그의 유골에 의한 근거다.

언젠가 EBS 세계테마기행 타이완 편에는 진먼 섬이 소개됐다. 도처에 수수밭이 많았다. 수확한 곡물로 58도 고량주를 만들고, 그 지게미로 소를 사육하여 고량우를 생산한다.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향긋한 명품이라고.

‘포탄칼’은 진먼의 삼대 특산품 가운데 하나다. 1958년 양안 갈등으로 빗발치듯 탄알이 날아왔고 이후를 합하면 100만 발의 포탄이 투하됐다고 한다. 지금도 농부들은 밭에서 불발탄을 발견한다고. 대장간에는 포탄 탄피가 언덕처럼 쌓였고 이를 잘라 내어 큼지막한 식칼을 만든다. 전쟁의 상흔이 기념물로 재탄생한 사례다.

‘전쟁과 평화’하면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이 연상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전쟁의 반대 개념은 평화다. 한데 뭔가 부족한 듯하다. 전쟁은 명확한 형태로 다가오나 평화는 단순명료하지 않다. 일촉즉발 안온한 상태를 평화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팍스 로마나’는 로마에 의한 평화를 이른다. 지중해를 내해로 삼은 강력한 로마 군단을 보유함으로써 제국의 안전을 이루었다. 국방과 식량과 내정은 로마 황제들의 시민에 대한 기본적 책무였다.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남북의 군사력이 대치하는 대한민국 또한 안보의 중요성은 불문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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