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철 자유기고가
사농공상의 신분사회였던 조선은 분명 이전 고려왕조보다는 능력중심의 사회였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기 성취의 다양성은 인정되지 않는 사회였다. 출세의 수단은 과거제도로 고착화되었고 상업과 기술은 천시되었으며 지위는 세습화되었다.

그 결과 제한된 관직을 놓고 엘리트들 간의 싸움은 치열해져 결국 망국의 당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명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토론을 허용치 않는 가부장 의식과 끼리끼리 문화는 오늘날 대규모의 조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조직들은 ‘순응형 모범생’을 선호한다.

실패한 뒤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는 한, 우리들은 순응형 모범생이 되기 위하여 전문직이나 대기업 취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 풍토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나올 수가 없다. 또, 자기성취의 다양한 경로가 생기지 않는다면 새로운 산업이나 일자리도 생길 수가 없다.

그리고 한 번 실패로 재기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는 기존의 일자리 싸움을 더욱 더 치열하게 해, 출세주의 문화는 더욱 더 득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최근 SK하이닉스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하이개라지(HiGarage)’는 눈길을 끈다. 직원의 아이디어에 자금을 지원하여 사내벤처로 육성하는 사업이다.

특이한 것은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재입사를 보장해 준다는 데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사내 벤처의 성공신화를 가지고 있다.

네이버의 시작은 삼성SDS의 사내벤처였으며, 국내 최초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도 LG데이콤의 사내벤처였다.

‘꿈의 힘을 믿는다(The Power of Dreams)’는 슬로건을 내건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은 세계적 수준의 오토바이, 자동차를 만들었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로봇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여전히 꿈을 위해 실패를 권장하고 있다. 그 기업의 이름은 ‘혼다’이다.

그래서 매년 가장 큰 실패를 한 연구원에게 100만 엔의 상금을 주는 ‘올해의 실패왕’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는데 실패를 두려워 말고 꿈을 향해 과감하게 도전하라는 창업주의 경영정신이 반영된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실패는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공을 위해 계속 도전한 그 과정이 진정한 의미의 성공을 가져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예로, 미국 기업 3M의 한 연구원은 강력 접착제를 만들려다 실패를 맛봤지만 그 실패사례를 동료들에게 공유하였고, 훗날 동료에 의해 ‘포스트 잇(Post It)’으로 개발되었다.

또, 리바이스 청바지의 탄생도 실패의 산물이다. 천막용 천 제조업자였던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3개월간 직원들과 꼬박 밤을 새워가며 파란색 천막 10만 개를 만들었지만, 의뢰자가 주문한 것은 녹색 천막이었다.

납품 실패로 10만 개의 파란색 천막은 고스란히 방치되어 회사는 망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평소 노동자들이 바지가 자주 찢어져 번거로워하는 모습이 떠오른 스트라우스는 천막으로 청바지라는 최고의 히트상품을 만들게 되었다. 오늘날 ‘리바이스’의 탄생배경은 이러했다.

이처럼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성공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문화는 새로운 도전을 어렵게 한다.

특히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창의적 역발상의 씨앗은 생겨날 수 없다.

실패한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샴페인파티를 해주는 기업도 있고 심지어 진급을 시켜주는 기업도 있다. 이처럼 좀 더 유연하고 획기적인 기업문화도 필요하다.

또, 실패에 대해 관용적이고 실패에서 배운 것이 존중되는 사회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실패를 용인하는 R&D를 장려하고 또, ‘성실한 실패’를 인정하여 실패의 경험까지 축적해 나가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힌 것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초등학교 시절, 제2의 ‘에디슨’을 꿈꿔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에디슨이 말한 것이 떠오른다.

“나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전구에 불이 안 들어오는 2,399개의 이유를 알았을 뿐이다”

실패가 ‘또 다른 시작’이 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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