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나는
바람이 부니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있을 뿐
통증은 190에 120
오래 함구하던 상처처럼
해변에서 태어났고 해변에서 경계를 넘고 있다
붉은 울음이 들려온다
울음이 혈관을 찢는다
내 몸의 가시가 내 눈을 찌른다 나는
나를 벗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감기인 줄 알았는데 말기였고
모래인 줄 알았는데 바위였다
눈물인 줄 알았는데 폭우였고
정말이지 뇌출혈인 줄 알았는데 우울이었다
모든 게 경계 넘어 악성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합니다
여기가 무덤입니까
다음 계절 쪽으로 한 발짝도 옮기지 못했는데
오늘은 흐린 허공에서 칼날이 쏟아진다
바다는 흐느끼고





<감상> 해당화는 참 아름다워 보이는 꽃인데, 꽃을 보는 시인은 무척 슬픕니다. 해당화의 모습에 시인 자신을 투영하고 맙니다. 지켜온 경계를 넘어서 오래 함구해온 울음이 터집니다. 근원적인 슬픔인지, 대상을 잃은 슬픔인지 그 원인이 뭔지 잘 모릅니다. 상처의 극단까지 밀고 간 후에야 마음의 병인 줄 어렴풋이 압니다. 무덤 같은 여기에서 자신이 누군지 잘 알지 못한 채 통증에 흐느낍니다. 하늘에선 비마저 칼날이 되어 퍼붓고 바다는 함께 흐느낍니다. 바다처럼 속 시원히 울다보면 큰 슬픔도 누그러지겠지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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