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못 들 만큼 수치가 온몸을 떨게 했을 때
고개를 들 힘조차 없어 무릎이 꺾였을 때
고개를 푸욱 숙이고 걸을 때
고개를 돌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을 때
고개를 떨구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을 때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병이 별안간 닥쳤을 때
고개를 저으며 멀어져갔을 때
고개를 천천히 발음했을 때
후드득
씨앗들처럼 뜯겨나간 얼굴들 앞에서
혼자 땀을 흘리고 있었다
혼자 혼자였다





<감상> 온갖 수치와 절망 속에서 고개를 숙일 때 혼자입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병마에 시달릴 때도 혼자입니다. 특히 고개를 저으며 죽음을 맞이할 때는 절대 고독에 이르고 맙니다. 모든 권력과 부귀를 가져도 아무도 대신할 수 없이 혼자 멀어져 갑니다. 생노병사(生老病死)가 그러합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향해 고개 빳빳이 쳐들어 밭을 이룬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뜯겨나간 얼굴을 감추듯, 고개 숙여 혼자 땀을 흘리는 게 삶임을 깨닫습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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