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애 터지는 슬픔도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흐릿해지지
시간이 흐르고
흐려지지
장소는
어디 가지 않아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은
영원한 것 같은
아플 것 같은
아픈 것 같은

장소들





<감상> 특히 육친(肉親)을 잃은 슬픔은 애 터지는 슬픔이다. 이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흐릿해진다. 추억이 깃든 장소는 어딜 가지를 않으니, 그 자리에 가면 슬픔이 새로 터져 나온다. 가령 어머니 몰래 용돈을 넣어두었던 장판 지갑, 비탈진 밭에서 호미로 평생 일궈온 붉은 흙들, 굽은 등처럼 무덤을 감싸 안고 있는 능선들, 그 아래 양지 바른 곳에 있는 작은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 이런 공간들이 미래이거나 현재이거나 영원과 아픔이 함께 공존할 것 같은 장소들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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