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쇠 뚜드리던 피가 있나보다
대장간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안쪽에 풀무가 쉬고 있다

불이 어머니처럼 졸고 있다
- 침침함은 미덕이니, 더 밝아지지 않기를

불을 모시던 풍습처럼
쓸모도 없는 호미를 하나 고르며
둘러보면,
고대의 고적한 말들 더듬더듬 걸려 있다

주문을 받는다 하니 나는 배포 크게
나라를 하나 부탁해볼까?
사랑을 하나 부탁해볼까?
아직은 젊고 맑은 신(神)이 사는 듯한 풀무 앞에서
꽃 속의 꿀벌처럼 혼자 웅얼거린다





<감상> 누구나 가슴에 불을 안고 있으니 대장간의 풀무를 그리워한다. 불이 어머니처럼 졸고 있으니 더 정감이 간다. 더군다나 대장간에는 고대의 고적한 말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백석 시인의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 저녁 끼 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 하였다.<고방>”에서 옛말(古語)이 “고대의 고적한 말들”과 연결되는 느낌이다. 음식을 저장하는 고방이나 불을 품고 있는 대장간이나 저마다 말들이 살고 있다. 하여 말을 걸고 혼자 웅얼거릴 수밖에 없다. 사랑을 한 번 부탁해 보자. 그러면 풀무에서 나온 쇠가 모루 위에서 마음먹은 대로 형상을 갖출 것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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