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생일'서 세월호 참사로 아들 잃은 엄마 역할

전도연[매니지먼트 숲 제공]
“두 번이나 출연을 거절했어요.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부담과 ‘밀양’의 신애가 생각나서 고사했죠.”

25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전도연(46)은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는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영화 ‘생일’(이종언 감독)에서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순남 역을 맡았다. ‘밀양’(2007)의 신애 역에 이어 또다시 자식을 먼저 앞세운 엄마 역할이다.

“‘밀양’ 이후 아이를 잃은 엄마 역은 안 하겠다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도 ‘생일’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을 응원하고 힘이 돼주는 이야기라서 결국 선택했습니다.”

‘생일’[뉴 제공]
‘생일’에서 순남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눈물마저 말라버린 듯 건조한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무리 억눌러도 슬픔은 일상을 불쑥불쑥 헤집고 올라오는 법. 세탁기를 돌릴 때, 어린 딸이 반찬 투정을 할 때, 옷걸이에 걸린 교복을 바라볼 때, 한밤중에 현관 형광등이 저절로 깜박일 때 슬픔은 가슴을 후벼판다. 전도연은 “순남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영혼 없이 떠도는 유령처럼 보였다”고 했다.

“‘밀양’ 때는 결혼을 안 했기에 신애를 이해하려고 온몸을 불살랐다면, ‘생일’을 찍을 때는 한 발짝 떨어져서 보려고 노력했어요. 지금은 아이 엄마이다 보니 아이를 잃었을 때의 슬픔이 너무 크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실제 제가 느끼는 감정과 순남이 느끼는 감정을 분명히 구분하려고 했죠.”

독보적인 연기력을 지닌 그이지만,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감정적 소모가 체력적 소모로 이어지면서 촬영이 끝나고 밤에 잘 때는 ‘끙끙’ 앓았다고 했다. “순남의 일상을 연기할 때는 어려웠고, 감정이 터져 나올 때는 무섭기까지 했어요.”

전도연은 “슬프다고 해서 슬퍼지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 저절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면서 “그래서 그냥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제가 느끼는 만큼만 연기하자는 심정으로 카메라 앞에 던지듯이 연기했다”고 되짚었다.

‘생일’[뉴 제공]
극 중 차곡차곡 응집된 감정은 후반부 아들의 생일모임 때 폭발한다. 순남은 남편의 설득으로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생일 축하파티를 연다. 다 같이 아들 사진을 보며 저마다 추억을 회상한 뒤 흐느낀다. 약 30분 분량으로, 50여명의 출연진이 한데 모여 이틀 동안 롱테이크로 찍었다.

“정말 많이 울었어요. 울다가 멈췄다가 또 울고…다들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찍었던 것 같아요. 슬픔과 힘듦을 나누는 자리인데, 실제로 촬영하면서 누군가 슬퍼할 때 옆에 있어 주고 도닥여주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죠.”

전도연은 촬영을 모두 마친 뒤에는 팽목항에도 다녀왔다. “그곳이 빛바래져 기억의 저편으로 가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제가 이 작품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데 한몫한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전도연[매니지먼트 숲 제공]
영화는 추모와 위로에 방점을 찍지만,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관객들은 다가가기 쉽지 않을 듯하다. 전도연 역시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 셋을 키우는 고단한 워킹맘인 제 친구가 시사회 때 영화를 본 뒤 문자를 보내왔어요. 매일 힘들다고 투정하고,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도 잘 못 챙겼는데, 이 영화를 본 뒤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것, 집에 가면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내용이었어요.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전도연은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 이후 18년 만에 설경구와 한 작품에서 재회했다. 네티즌들은 둘을 ‘전설 커플’로 부른다.

“설경구씨는 친정 오빠 같아요. 18년 전에는 멋있는 줄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멋있는 사람이 됐더라고요. 호호”

전도연[매니지먼트 숲 제공]
1990년 CF로 데뷔해 TV 드라마에서 활약했던 전도연은 1997년 ‘접속’으로 스크린에 진출한 뒤 20여년간 여러 작품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밀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전도연은 그러나 여전히 작품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다.

“제 나이가 위치가 좀 애매한 것 같아요. 로맨틱 코미디를 하기도, 멜로를 하기도 모호한 나이죠. 50대가 되면 더욱 그럴 텐데, (들어오는) 작품이 많지 않네요.”

전도연은 “그래도 요즘은 여성 주연 영화가 조금씩 늘어나는 같다”며 “남성 중심의 누아르, 폭력적인 영화에 피로감이 생긴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도연은 차기작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촬영을 마치고 올가을 관객과 다시 만난다.

연합
연합 kb@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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