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jpeg
▲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포항지진 관련 정부조사 결과 발표가 있기 전인 지난 3월 5일에서 8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유발지진 관련 워크숍이 있었다.

여기서 포항지진과 관련한 9편의 논문이 발표될 만큼 지진학자들의 관심은 유난히 포항지진에 쏠렸었다. 또한 최근 7일에서 12일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2019 유럽지구과학총회’에서도 포항지진은 단연 이슈였다. 한 국내 언론보도에 따르면 세계 지질학계에서 ‘포항 교훈(Pohang Lesson)’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말인즉, 철저한 사전조사도 하지 않고 잇따른 경고(미소지진)조차 무시하며 지열발전을 강행할 경우, 어떠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로 포항지진의 사례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렇다면 정작 피해 당사자인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요즘 거리를 다니다 보면 시내는 물론 포항 전역에 걸쳐 포항지진 관련 현수막들이 도배되다시피 걸려 있는 걸 본다. 포항지진 발생 원인이 공식 발표된 뒤, 지역별 각종 자생단체가 일제히 내건 현수막들이다. 내용은 똑같다. 지진 발생 원인을 제공한 정부가 지진관련 모든 피해를 책임지라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란 엄밀히 말해 국가를 의미하는 것일 테니, 어느 정부에서 시작됐건 국가 차원에서 벌인 일이니 국가가 책임지란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비록 선의(?)로 시작 한 국책사업이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겼다면 마땅히 국가 차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실질적인 피해보상 역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안긴 지진이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인재였음이 드러난 이상 피해보상도 중요하지만 원인제공에 대한 진상규명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시민사회의 요구는 오로지 피해보상만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자체와 정치권 역시 시민들의 분위기에 편승해 진상규명 요구에는 소극적인 채 오직 정부의 재정적 지원만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번 사태가 발생한 배경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2일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포항시민 궐기대회에 앞서 포항시는 기자회견을 가졌었다. 이 자리에서 시장은 “결과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다”면서도 “(지열발전소 건설)이 국내 최초이고 국책사업이었던 만큼, 충분한 검증을 거쳤을 거라 믿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에 지질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정부와 과학자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며 “지열발전 관련 과학자들은 각성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너무나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열발전의 과학적 안전성에 대해선 여전히 지질학자들 사이에서는 논쟁거리다. 모든 지열발전소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 만큼, 잘못된 과정의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무조건 과학자를 탓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차라리 시민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위험의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 못 하고 다각도로 살피지 못한 무책임에 대해 먼저 반성하는 것이 옳다. 지진발생 수개월 전 스스로 현장방문도 하지 않았던가. 또한 국책사업이라 해서 무조건 믿었다는 말 역시 자치(自治)단체장으로서의 무능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막대한 피해로 무너져버린 삶의 터전을 바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지진이 발생한 총체적 원인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는 것 또한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과정 없이는 우리는 이번 사태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진도시라는 누명은 벗었지만 대신 우리 지역은 지열발전 최악의 사례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런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포항교훈’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