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전제군주국가였지만 국가 시책이 잘못됐을 때 유생들이 자신들의 의견과 주장을 전하는 길이 있었다. 궁궐 앞에 북을 달아 억울함이 있을 때 치게 한 신문고도 있었다지만 상소(上疏)제도가 대표적이다.

유생들의 개인 상소가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의 국민청원 같은 집단적인 상소도 있었다. 집단상소는 16세기 전반까지는 중앙 교육기관인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 주도됐다. 16세기 중엽 이후에는 지방 사족(士族)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유생 집단이 형성돼 지방 유생들에 의해서도 주도되기 시작했다.

1792년(정조 16)에는 이우를 대표로 한 최초의 ‘만인소(萬人疏)’가 왕에게 올려졌다. “사도세자(정조의 아버지)가 벽파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그들을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 소에는 영남지역 유생 1만57명이 서명했다. 정조 앞으로 불려 간 이우가 상소문을 읽어나가자 정조는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도 국민의 억울함을 들어주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모토로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은 2017년 8월 17일 신설된 청와대 인터넷 게시판이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은 정부와 청와대가 답하는 것이 원칙이다.

‘탈원전 정책 반대와 울진의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라’는 국민 33만 명의 청원에 대해 답변을 미뤄 오던 청와대가 약 두 달 만에 “산업통상자원부로 문의하라”는 한 문장 짜리 답변을 냈다.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과 맞지 않아서 인지 너무나 무성의한 답변을 내놨다는 것이 서명운동을 추진한 단체의 말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울진의 원자력마이스터고 학생과 학부모가 청와대에 탈원전 반대 손편지 170통을 보냈는데도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는데 ‘만인소’가 아니라 ‘33만인소’에도 이런 무책임한 답변을 한 것은 왕조시대와 비교될 만한 일이다.

2017년 발생한 포항 지진과 관련, 각종 지원과 손해배상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국민청원도 지난 12일 20만 명을 넘었다. 포항 시민들이 청와대가 또 어떤 답변을 내 놓을 지 서울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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