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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대 변호사
법정에 출석하다보면 이곳보다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세상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법정은 싸움 곧 쟁송(爭訟)사건을 다룬다. 그러나 그 싸움은 전혀 소란스럽지도 않고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지도 않고 오히려 조용하고 어느 곳보다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이뤄진다.

민사법정은 돈 문제를 비롯하여 이혼, 행정 등 온갖 다툼을 다루고 형사법정은 살인, 강도, 강간 등 온갖 범죄를 다룬다. 재판의 결과는 때로는 누군가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정에 출석한 판사나 변호인, 당사자, 방청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논리와 이성에 근거한 평화로운 사법 절차에 따른다. 물론 피고인이나 증인 신문 과정이나 쌍방이 변론을 하는 과정에서 격해지기도 하고 방청석에서 탄식이나 한숨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이처럼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재판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신뢰의 크기도 적지 않다. 재판에 대한 신뢰는 우리 사회 정의 실현의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수단인 사법질서에 대한 신뢰를 낳고 사법질서에 대한 신뢰는 사회구성원의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재판에 대한 신뢰는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재판에 헌신적인 판사들의 노력에 좌우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재판의 결론인 판결에 좌우된다. 그런 점에서 판결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최근 같은 날 사회적인 관심이 쏠린 두 개의 형사 사건에 대해 판결이 있었다. 하나는 1997년 이태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한 판결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이완구 전 총리의 정치자금 불법수수 사건에 대한 판결이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우리 사법시스템의 경직성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이 사건을 처음 맡은 검사는 경찰과 미군범죄수사대의 판단에 따라 좁은 살해현장에 있었던 단 두 명인 아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를 살인죄의 공범으로 기소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검사는 키가 큰 리가 피해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부검의의 소견에 따라 리를 단독 살인범으로 기소했다. 이후 대법원이 1998년 4월 리가 범인이 아니다면서 파기환송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 인멸죄로 복역중인 패터슨이 1998년 8월 형집행정지를 받고 1년 뒤에는 미국으로 도주하기까지 방치했다.

수사도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누구도 그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지 않고 바로 잡히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비록 19년만의 때늦은 판결이지만 마침내 정의를 실현한 판결로 남았으면 한다.

이완구 전 총리의 정치자금 불법수수에 대한 판결은 이완구 전 총리에 대해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천만원의 형을 선고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법정을 나오면서"저 이완구가 국가와 나라를 걱정하고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기억해주길 부탁한다"는 말까지 하면서 자신의 결백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판결이 유죄를 인정했다면 "공직에 헌신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를 들어 어정쩡하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것이 아니라 거물 정치인으로 행세하면서 뒤로는 태연히 불법적으로 돈을 챙기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조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점에 비춰 실형을 선고했어야 했다.


윤정대 변호사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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