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사용 효과는 엄청난 개발 비용에 비해 언론보도보다 제한적일 것

▲ 윤정대 변호사
지난 한 주 내내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이 단연 화제였다. 첫 대국에서 이세돌이 알파고와 바둑대결에서 지자 그 다음날 신문 1면들은 "인간, 기계와의 두뇌 싸움에서 지다", "인류사의 이정표적 사건", "인공지능, 인간을 넘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에 인간이 졌다", "2살 인공지능, 5000년 인간 바둑을 넘다" 등의 제목을 달았다. 언론들은 이세돌이 바둑대국에서 알파고에게 패하자 인간의 운명이 걸린 대결에서 진 것처럼 한탄했다. 이세돌이 인간대표로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바둑대결에 나선 것처럼 말이다. 인류역사에 인공지능의 지배를 알리는 극적인 사건이 터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언론뿐만이 아니다. 바둑고수들은 알파고의 수를 두고 경악하고 감탄을 연발했다. 인간은 기계와 상대하기 어렵다. 이미 수많은 기계들은 이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 알파고가 바둑을 잘 두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엄청난 돈을 들인 알파고가 그 정도도 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계가 인간의 사고나 행위의 일부는 대신할 수 있어도 완전히 대신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게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필요성도 없다. 그 이유 하나는 인간 삶의 존재방식을 기계가 추구하는 효율성이나 정확성으로 전부 채울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인간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비효율적이며 심리적, 정신적, 육체적 기복(起伏)을 지닌 존재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서도 알파고는 짧은 시간에 효율적이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수를 놓은 반면 이세돌은 바둑 프로 9단의 고수이지만 장고를 거듭해 시간에 쫓기고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비효율적이기도 한 인간의 모습을 보였다.

인간은 실수하고 흔들리고 혼란스럽고 감성적이며 잡다하고 어설프다. 그것이 인간 본질의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절반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절반의 본질이 삶을 단조로운 흑백에서 컬러로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기 어려운 나머지 이유는 비용이다. 바둑 게임 인공지능에 불과한 알파고의 개발에조차 엄청난 돈이 들어간 사실에서 보듯이 다양한 방면에 적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러나 엄청난 비용을 상쇄할 만큼 인공지능의 개발과 사용이 필요한 부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전산정보기술의 발전은 우리 삶의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지만 삶 자체를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저 과거와는 달리 돈을 먹는 휴대폰과 컴퓨터가 하나씩 주어졌을 뿐이다. 우리는 그 휴대폰과 컴퓨터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만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하고 더 평화로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제는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야 했다. 꽉 끼는 셔츠를 입은 컨설턴트들이 노트북의 뚜껑 여는 방법을 알아내기까지 아무도 집 한 채 지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마치 그게 그 옛날 콜로세움과 기자의 피라미드를 세운 방법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맙소사, 사람들은 1889년에 에펠탑을 세웠는데..."

이세돌이 알파고와 바둑대국에서 패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거나 뒤집혀지지 않는다. 더구나 이세돌은 끝내 4국에서 이겼지 않는가. 그래서 언론에 정말 한 마디 하고 싶다. "호들갑 떨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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