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당원 뜻과 상관없이 은혜를 베풀듯이 야합하는 국회의원 공천제도 바꿔야

왕조시대 특히 유교이념이 강화된 조선시대에 절대 권력자인 왕에 저항하는 것은 목숨을 내거는 일이었다. 왕에 저항하는 자가 설령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왕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옳고 옳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다. 왕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용납할 수 없다. 따라서 왕이 어리석거나 불공정하거나 가혹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지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리석은 행위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를 알고 있었다. 따라서 왕을 비판하는 자는 그것이 왕과의 싸움임에도 왕과의 싸움을 회피하고 왕의 측근들을 비난한다. 왕을 건드리는 일은 피하고자 했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왕인데도 말이다.

왕을 비판하거나 왕에 저항하는 일이 왕의 측근들을 비판하고 저항하고 싸우는 일로 포장된다. 왕을 비판하는 자는 왕이 아니라 왕의 측근들을 비판하는 것임을 내세운다. 하지만 왕의 측근들은 그가 결국 왕을 비판하는 것임을 안다. 왕의 측근들은 한걸음 더 나가 왕을 위해 왕에 저항하거나 비판하는 낌새라도 보이는 자를 골라내고 적절한 명분을 내세워 자르고 제거한다. 왕에 저항하는 자는 왕의 뜻을 받드는 수족들과 싸우는 상황에 놓인다. 왕에 저항하면서도 왕을 비판하지 못하고 왕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왕의 측근들을 비판한다. 왕에 저항하면서도 왕을 기리고 왕의 성공을 비는 혼돈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

이것이 왕에 대한 분명한 비판과 왕의 권력에 대한 분명한 제한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서 출발하는 서양 정치사와는 달리 동양의 전제 군주 국가에서 과거 반복된 정치의 실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구의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동양 전제군주국가 시대에서나 벌어질 어둡고도 우울한 일이 '국회의원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벌어졌다.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유승민 의원에 대해 "(당이) 텃밭에서 3선 기회를 주고 늘 당의 요직을 줬다. (그럼에도) 당을 모욕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승민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것은 당이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가 말하는 당은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거나 모욕을 당하는 살아있는 실체가 아니다.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유승민 의원이 당시 박근혜 당대표의 은혜를 입어 국회의원이 되었음에도 주군인 박근혜 대통령을 배신하고 자기 정치를 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이 나라에 국회의원이 되려는 자는 주군의 성은(聖恩)을 입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이한구 공관위원장뿐만이 아니다. 여당 국회의원이 되려는 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진박, 친박이라고 내세우면서 성은을 입었음을 경쟁적으로 내보이고 있다. 이것은 여당만의 현상이 아니다. 야당의 공천과정도 비슷하기는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국회의원 공천을 받아야 하고 국회의원 공천을 받으려면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입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국회의원이 된 자들은 임기 내내 국민이나 자신의 지역구민을 생각하기보다 은혜를 베풀어준 누군가를 먼저 떠올리고 그의 수족 노릇을 충실히 하지 않겠는가. 소수의 사람들이 지역구민의 뜻이나 지역당원의 뜻과는 상관없이 밀실에서 은혜를 베풀듯 야합하는 현재의 국회의원 공천제도를 바꾸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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