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정갈한 본당 철거 거대한 성당 건물이 들어서 마음의 안식처 사라져 섭섭

미국의 종교사회학자인 필 주커먼이 쓴 '신 없는 사회'는 책 제목과는 달리 "요즘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종교적인 것 같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중동에는 이슬람교가 근본주의로 물들면서 광적인 형태의 신앙이 인기를 끌고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에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번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커먼은 기독교 국가이자 복지국가인 덴마크와 스웨덴을 들여다보면서 적어도 북유럽에서는 종교 곧 오랜 기독교 신앙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말한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국민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고 기독교에 대한 관심조차 거의 없어지고 있다. 이 나라들은 교회 예배에 한 달에 한번 이상 참석하는 사람은 10% 정도이며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어 덴마크는 3%, 스웨덴은 7%뿐이다.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을 옮긴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거의 없다. 덴마크에서 자녀에게 가르쳐야 하는 덕목들에 대한 질문에 관용/존중, 독립성, 예의범절,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상상력 등을 든 사람은 각각 87%, 80%, 72%, 56%, 37%인 반면 기독교 신앙을 든 사람은 8%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덴마크와 스웨덴 사람들의 90% 정도가 기독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도덕적 규범으로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으며 단지 전통적인 문화 양식으로 여길 뿐이다.

종교는 병자와 노인,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돌보고 자비와 자선을 행하고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고 관대한 마음과 겸손과 정직을 기르고 개인적인 이기심보다 공동체를 생각하라고 가르쳐 왔다. 하지만 이런 종교의 가르침을 가장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곳은 종교적인 나라가 아니라 덴마크와 스웨덴 같이 가장 비종교적인 나라들이다. 세계는 미국,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시아의 일부와 같이 빈부 격차, 상대적인 박탈감, 불안정한 사회, 낮은 삶의 질에 시달리는 나라일수록 종교적인 반면 북유럽과 같이 정의롭고 안전하고 평등하고 인간적이고 번영하는 나라일수록 비종교적이다. 주커먼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거나 종교행사에 참여하거나 세례를 받지만 그것은 깊은 신앙 때문도 아니고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도 영생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라 특별한 고양된 기분을 느끼거나 마음의 위로를 받거나 공동체의 유대감을 얻거나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문화적인 관성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구 범어성당 본당건물이 지난 3월 19일 철거됐다. 입구 처마 위에 수호성인인 프란치스코 성인 상이 서 있는, 오랫동안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으로 소박하고도 정갈함을 유지한 건물이기도 했다. 뒤늦게 철거 사진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지난 10년 동안 신자로서 그곳에서 주일미사를 드리며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 미사가 끝난 후 프란치스코 성인이 바라보는 본당 앞마당에서 교우들과 순정하면서도 따뜻한 공동체의 느낌을 나눈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신앙을 위해 내가 읽은 종교서적들이 주지 못한 위로와 기쁨이었다. 내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당 건물을 찬미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본당 건물이 이제는 없다. 옆에 수백억 원을 들인 거대하고 높고 두꺼운 중세의 성당을 모방한 것과 같은 건물을 보노라니 마음이 가난한 자를 위로하는 성당건물이 아니라 성직자의 권세를 높이는 건물인 것 같아 영 발길이 닿질 않는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