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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병원 원장

아기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새근새근 자는 잠을 ‘나비잠’이라 한다. ‘나비잠’이라고 가만히 불러 보면 아기의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리고 가볍게 벌어진 입술로 방긋이 웃는 천사의 미소가 보이며 향긋하고 투명한 살 냄새가 나는듯하다. 예쁜 나비 한 마리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참 고운 우리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고 편치 않은 자세로 자는 잠을 ‘새우잠’이라 하고 옷을 입은 채 덮개 없이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자는 잠을 ‘등걸잠’이라 하고 꼿꼿이 앉은 채로 겨우 버티면서 자는 잠을 ‘말뚝잠’이라 한다. 그뿐인가? 귀잠, 꾀잠, 늦잠, 단잠, 발칫잠, 선잠, 수잠, 이승잠, 풋잠, 한뎃잠, 두벌잠, 꿀잠, 꽃잠, 통잠 등 우리말에 잠에 대한 표현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랍다.

나비잠을 자는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꺼풀로 곱게 덮여 있는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일 때가 있다. 이렇게 눈알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자는 잠을 ‘급속 안구운동 수면’이라 한다. 그리고 조용히 아무 움직임 없이 곤하게 새근새근 자는 잠을 ‘비급속 안구운동 수면’이라 한다. 이렇게 수면을 두 가지로 나누어 놓은 이유는 정신생리학적으로 이 두 수면이 너무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선 ‘급속 안구운동 수면’은 수면이기는 하지만 깨어 있는 수면이다. 이때는 왕성한 신진대사가 이루어진다.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고 심박출량이 많아지고 호흡수도 증가하며 혈압, 대뇌 산소 소비량 등이 높아진다. 이때는 생식기도 팽창하여 발기도 되고 정신활동이 증가하여 꿈을 꾸게 된다. 잠을 자는 모습이지만 왕성하고 활기찬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비급속 안구운동 수면’은 많은 활동이 정지되고 깊은 잠을 자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뇌파도 느려지고 근육의 긴장도 없어지며 심박출량도 저하 되고 호흡수도 감소되고 체온의 변화도 거의 없고 꿈도 꾸지 않는다. 정신 생리학적으로는 하루 8시간 수면 동안 ‘비급속 안구운동 수면’ 70% 정도와 ‘급속 안구운동 수면’ 30% 정도의 비율로 이루어지는 것을 이상적인 수면으로 생각한다. 이런 비율에 문제가 오거나 불규칙하거나 너무 다른 주기로 나타난다면 바로 수면의 장애가 되는 것이다.

잠을 잘 자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잠은 바로 회복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밤과 잠은 다음날의 정신건강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잠을 잘 자지 못하거나 잠에 문제가 오면 큰 어려움을 겪는다.

잠과 관련된 병(수면장애)은 너무나 다양하다. 우선 잠을 잘 이루지 못하거나 유지하기가 어려운 ‘불면증’이 대표적인 병이다. 불면증으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워 본 사람이야말로 잠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반대로 지나친 수면과 주간에도 졸음이 계속되는 ‘과다 수면증’도 잠과 관련된 병이다. 혹은 깨어 있어야 할 낮에 갑자기 통제할 수 없이 엄습해 오는 졸림으로 자신도 모르게 쓰러져 깊은 잠을 자게 만드는 병을 ‘기면증’이라 하며 운전이나 기계 작업 도중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그 외 수면무호흡증, 수면-각성 주기 장애, 하지 불안증, 악몽증, 몽유병, 야경증 등 수면과 관련된 병은 매우 다양하고 많다. 그래서 그렇게 다양한 우리말 표현이 있는 가 보다.

현대인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병이 바로 수면 장애다. 밤과 낮이 구분되지 않고 늘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지내며 생활의 리듬을 잃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수면장애는 너무 흔한 병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이 어려움 속에서도 꿀잠, 깊은 잠, 단잠을 잘 수 있다면 참으로 정신 건강한 사람이라 할 수 있으며, 잠이 보약이라는 것을 느끼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곽호순병원 원장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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