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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한 수필가
대구 남산동 성모당에 가면 소원성취가 이루어진다고 기도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 바로 아래 성직자 묘역이 있는데 입구 기둥에 라틴어로 ‘HODIE MIHI, CRAS TIBI’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것을 보고는 섬뜩했다.

‘오늘은 내가 묻히기에 장례를 위해서 여기에 왔지만, 그러나 내일은 당신 차례이니 미리 준비하라’는 메시지로 귓전을 울린다. 정말 묘역에 잠든 성직자도 죽음은 나이순서도 아니고 돈, 벼슬, 명예도 불문하고 한순간에 “아차”하면 여러분도 무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한 치 앞을 모르는 나약한 인간의 속세 현실을 깨닫게 한다.

‘사람의 육체는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회귀 진리를 우리는 믿으며 알고 있다. 자신의 능력과 열정들을 태어난 지구 상에 모두 쏟아 붓고 재물과 영육도 다 비우고 빈손으로 온 것처럼 가볍게 빈손으로 운명대로 살다가 돌아가는 것이 순리다. 맨주먹 쥐고 태어나서 주먹을 펴고 빈손으로 떠나는 ‘공수래공수거’ 인생길이니 세상사 초심으로 출발해 초심으로 도착하라는 계시다.

이슬람의 성인 마호메트가 한 말로 기억이 되는데, 운명에 대해 누군가가 마호메트에게 물었다. 마호메트의 대답은 이렇다 “발을 들면, 한 발은 땅에 붙어 있지만 다른 한발은 자유롭다” 한발을 들고는 자기 의지의 운명대로 움직이지만, 한발을 들면 다른 한발은 지구 상에 붙어 꼼짝달싹을 못해서 주어진 운명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이미 주어진 선천적 운명과 바꿀 수 있는 후천적 운명이 같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운명은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의 목숨은 마음먹기에도 달린 경우도 많다. 사소한 문제로부터 다투거나, 실연, 실직, 생활고나 사정기관에 조사받다가 목숨을 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선망의 꿈인 대통령, 장관까지 했던 분도 그랬고. 최근 뜨고 있는 공무원의 우상인 시장, 경찰서장까지 오른 분도 퇴직 공허 우울증에 시달려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를 자살공화국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천재지변이나 사건 사고로도 소중한 목숨이 수없이 희생되는데 자기 스스로 자기 목숨을 헌신짝 취급하니 따라 할까 봐 걱정되어 매우 안타깝다.

숨 쉬는 육신은 자기 의지도 영향을 미치지만, 한편은 자신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에 매달려 세월에 떠밀려 반짝하다 가는 허무한 인생이다. 사람의 운명인 목숨도 따지고 보면 줄일 수도 있고 늘릴 수도 있는 고무줄이다. 태어날 때 나름대로 받은 선천적인 각본운명에다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후천적인 맞춤운명이 남은 생사를 좌지우지하니 그렇다.

별에 별일이 다 있는 70억 명이 사는 세상에는 독가스나 실족으로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지는 ‘파리 목숨’도 있지만, 비행기가 추락하고 배가 뒤집혀도 살아남는 오뚝이처럼 질긴 ‘찰떡 목숨’도 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목숨! 고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이만큼 살아온 것도 기적이고 대박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니 우리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사는데 정성을 다하고 공도 드리면서 ‘파이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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