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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박근혜 후보는 ‘기초노령연금’을 중요한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TV토론에서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의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당선된 후 그는 새누리당 원내대표 최경환의 입을 통해 부득이 이 공약을 지킬 수 없다는 발표를 하고 말았다. 이후 야당의 공세에 따라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공약 불이행에 대하여 사과하기는 하였지만, 새누리당에서는 이후에도 오히려 “지킬 수 없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라는 식으로 대통령을 두둔하여 국민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던 진영이 공개적으로 ‘기초연금법 정부안’에 대하여 반대하였고 국무총리가 나서 사의 철회를 촉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진영 장관의 사표는 수리되었고 정부안이 그대로 추진되었다. 당시에도 언론에서는 공약 수정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의 몫인데 장관이 그 책임을 대신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비등하였다. 그의 후임 장관은 문형표다. 문 장관은 장관을 마치고 산하기관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이사장으로 역영전(逆榮轉)까지 마다하지 않았지만 결국 지금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있다.

박 전 대통령이 2014년 5월 19일 TV에 나와 세월호 관련 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 해경 해체와 함께 낙하산인사를 근절하겠다고 한 바로 다음 날 김기춘이 문화체육관광부에 낙하산 인사 지시를 하였다는 류진룡 전 장관의 폭로가 있었다. 김기춘의 지시 내용은 “쟈니윤을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로 임명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청와대 주도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고 이를 토대로 문화예술인을 탄압하려고 하였을 때도 류 전 장관은 직원들에게 블랙리스트를 무시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일 처리를 하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류 전 장관은 직접 청와대를 방문하여 박 전 대통령을 만나 차별과 배제 행위 등 블랙리스트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으나 대통령은 묵묵부답이었다는 폭로까지 내놓았다. 결국, 류진룡 장관은 장관업무로 해외 출장을 가 있던 중에 갑자기 면직되었다. 통상 후임자를 정해 놓은 후에 사표를 수리하거나 면직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청와대는 갑작스럽게 류 전 장관을 면직시켰다. 그의 후임 장관은 이미 유명한 인사가 된 광고 감독 차은택의 대학 은사인 김종덕이다. 또 김종덕의 후임 장관은 ‘박근혜의 여자’라고 불리던 조윤선이다. 결국, 류 전 장관의 두 후임 장관은 지금 모두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3대 세습이라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철권 세습 통치를 이어오고 있는 북한 정권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김재규의 극단적인 선택이 없었다면 박정희의 유신정권도 아직 유지되고 있었을 것이라던 지인의 한탄에 모골이 송연한 적도 있다.

NO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제도(制度)’만으로는 누구도 존재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던 시대착오적인 ‘블랙리스트’조차 막을 수 없었던 것을 우린 체험하고 말았다. 가만히 있지 않고 부단한 노력으로 권력에 대하여 NO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이 하나라도 더 있었다면,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철저한 소명감과 헌법수호 의지를 가지고 상대가 청와대라고 하더라도 부당한 지시에 대하여 NO라고 말할 수 있는 공직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헌재에서 파면된 대통령이 다시 코앞에 닥친 구속 전 피의자신문이나 준비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정도의 ‘국격추락(國格墜落)’만은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제 방(榜)이라도 하나 붙여 보려고 한다. ‘사람 구함! 정규직! 단, NO라고 잘 말할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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