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도 가끔
그 저녁의 연못이 그리웠던 건
내 몸 속에도 그런
저문 연못이 있기 때문일 거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는
내 손끝 닿을 듯 말 듯한
하여, 너를 밀어낼 수도 당겨 넣을 수도 있는
가랑이와 가랑이 사이처럼

(중략)

체액처럼 희뿌윰한 찔레꽃 훅,
코를 찌르는 향기 쏟으며
무더기무더기 피어 있던





감상) 횡단보도가 파란불로 바뀌고 나는 아무도 건너지 않는 길 앞에서 잠시 기다린다. 바람이나 모래알갱이들이나 오월의 햇살 같은 것이 느릿느릿 걸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오후 두 시. 내가 함부로 그 길을 지나가버리지 못하는 건 내 안에도 그런 텅 빈 공허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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