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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을 둘러싼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원칙’을 보면 휘어진 젓가락으로 밥알을 집는 것 같다. 과연 이런 젓가락으로 앞으로 5년간 깨끗하고 능력 있는 새 인물들을 등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간다.

문 대통령이 대선 기간 때 병역회피,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탈세, 논문표절 등의 5대 비리에 포함되는 인사는 고위공직자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이 인사 5대 배제 원칙을 대통령 취임 1개월도 되지 않아 스스로 무너트리고 이 인사 원칙을 자위적 고무줄 원칙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신에게 요구한 엄격한 잣대를 지켜야만 국민에게 존경을 받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촉나라(221-263년)의 제갈량이 휘하 장군 가운데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마속(馬謖)이 자신이 내린 군령을 어기고 전투에서 패하자 이에 책임을 물어 울면서 참수를 한 이야기(읍참마속)는 지도자는 공정함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려야 한다는 사례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교훈적 이야기이다.

문 대통령이 위장전입의 전력을 가진 이낙연 총리 후보자를 자신이 내세운 인사 5대 배제 원칙에 따라 총리 후보지명을 철회하고 국민에게 철회의 양해를 구했다면 대도무문(大道無門)의 큰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안타깝게도 놓쳐 버렸다.

이낙연 총리후보자가 지난달 31일 국회의 임명동의안을 통과함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가 되었으나 국회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는 장관후보자와 장관급 후보자들 가운데 1차로 문 대통령의 5대 인사배제원칙에 해당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문 대통령의 고무줄 인사원칙 기준이 어떻게 제시될지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하순 이낙연 총리의 국회 임명동의안에서 부메랑이 되어 온 고위공직자 5대 인사배제원칙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하자 이 인사 원칙에 대한 수정안을 내놓았다. 이 수정안대로라면 강외무장관후보자와 김상조 후보자는 5대 원칙에서 빠지게 되어 있다.

이 수정안은 2005년 7월을 기준으로 하여 7월 이전에 위장 전입자나 부동산투기를 했을 경우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면 인사에서 구제하고 7월 이후에 위장 전입을 했거나 부동산 투기를 했으면 무조건 인사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과연 이러한 잣대가 어떤 기준에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나 강·김 두 후보자를 구제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이들 두 후보자는 2005년 이전에 위장 전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자신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내가 한 말에 대해 나는 이를 지키는데 강박관념이 있다”고 한 사실을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을 할 것인가? 한번 약속한 것은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여러 차례 말을 바꾸거나 불리한 대답에는 말을 얼버무리는 등 상대의 질문을 교묘하게 빠져나온 사례들을 국민에게 많이 보여 주었다.

이번 고위공직자 인사 5대 배제 원칙에서도 이낙연 총리가 첫 번째로 배제 대상자가 되자 “정권 인수위 기간이 짧아서 이런 오류가 생겼다”면서 국민에게 일고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임시 수정안을 만들어 총리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사례가 단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절대 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치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역대 정권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이 경험했고 그 말로를 보아 왔다. 권력이 있을 때 이 권력을 절제할 줄 아는 이가 진정한 통치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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