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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 5. 감포 척사길~ 두원리

이순화 시인 cho@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6월04일 21시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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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한 폭의 수묵화 풍경에서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와 마주하다

▲ 해무 속에 감포등대
문득, 뒤돌아본 풍경 앞에서 나는 쉬 발길을 떼지 못한다.

감은사 삼층석탑을 형상화한 감포등대가 가는 길 배웅이라도 나온 듯, 해무 속에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다. 오래된 옛집 동네 어귀에 선 엄마의 모습이 저랬다.

아쉬움에 머뭇거리며 감포 척사길로 접어든다. 구붓한 해변 길을 돌아나가니 낯선 풍경이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강태공이 낚싯대를 드리우듯 긴 장대를 든 사람들이 자연산 미역을 따고 있다.

긴장의 끈이 팽팽한 진풍경 앞에서 그물 손질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본다. 아주머니는 "요즘 사람들은 옛날처럼 애기도 많이 낳지 않고 미역이 잘 안 팔립니더"라며 고단한 손짓이 돌아온다.

길을 재촉하는 걸음 앞에 척사길 표시판이 나와 있다. ‘척사’ 처음에는 백사장이 길다고 ‘장사’라 부르던 것을 다음에는 창 같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창사’라 고쳐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보기를 더없이 너른 모래사장이 비단같이 펼쳐져 있는데, 파도가 치면 자로 비단주름을 재는 형상으로 보여 자‘척’에 비단을 깁는다는‘사’자를 써서 그때부터 척사라고 부른단다. 수십 수백 폭의 비단주름치마를 상상하며 발길을 옮긴다.

▲ 바다와 아이들
오류2리 동회관을 지나 바닷가 정자가 한가롭고 방죽을 따라 해파랑길 표식이 더없이 붉다. 갯마을 마당에는 우뭇가사리 묵을 쑨다는 천초가 햇살아래 몸을 말리고 있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척사포구를 지나 언덕배기 해안경비초소가 동해를 내려다보고 있는 오르막을 오른다.

해안가 작은 동산, 여기가 야생화 군락지인가. 엉겅퀴, 미나리아재비, 붓꽃, 토끼풀꽃… 앞다투어 피어있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향긋한 꽃냄새에 취해 본다.

싱그러운 풍경에 몸을 맡기고 내려다본 광경.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시원하게 펼쳐진 백사장. 모로 누운 여자의 허리선 같은 해안선. 하얗게 거품을 토해놓고 뒷걸음질 치는 파도.

이를 두고 나는 한 겹 또 한 겹 긴 줄자를 든 파도가 일렬횡대로 달려 나와 비단주름을 재고 있을 거라고만 상상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 선다.

국도변에서 내려다본 해파랑길
‘창바위길’이다. 창바위가 어디에 있나, 둘러보는 중에 ‘아름다운 오류 고아라해변’ 간판이 솔숲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해변 입구 정자에서 만난 주민의 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저기 7번 국도인 해안도로가 일제강점기 때 일정을 위한 노역의 길이었다며 아득히 먼 바다에 시선을 둔다.

그 고된 눈물의 길이 지금은 여행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관광길이 되었단다. 솔숲을 지나온 바람이 해파랑길 붉은 띠를 흔들고 있다.

해변 솔숲 사이로 보이는 오류 캠핑장이 소란스럽다.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너른 백사장에 텐트 치는 사람들, 낚싯대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들, 모래성 쌓는 아이들, 공놀이하는 청년들… 오류 고아라해변에 활기가 넘친다.

바다로 흘러드는 계류를 뛰어넘어 올라선 해파랑길, 화살표시를 따라 시멘트 계단을 오른다. 푸른바다를 옆에 끼고 모곡마을 경로회관 앞에서 ‘모곡’이라는 이름에 마음이 꽂혀 머뭇거리다 주민을 만나 말을 붙여본다.

▲ 해파랑길지도
옛날 어느 선비가 지나가다가 야생보리가 잘 된 것을 보고 보리를 심어 정착했다는 유래를 듣는다. 처음에는 보리맥을 써서 맥곡, 맥곡 하던 것을 지금은 ‘모곡’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단다.

두어 발 뗐을까 민가 담벼락에 ‘보릿골 길’ 안내 표식이 발목을 잡는다. 나는 왜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때에 겪었다는 가난했던 그 유월 보릿고개가 생각나는 것일까. 슬프지만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 느낌은 또 어디서 오는 것일까. 수묵화처럼 들어앉은 모곡항을 두고 왼쪽 울산~구룡포간 국도로 올라선다.

국도변에는 아름다운 펜션들이 전망 좋은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음악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저 앞에 중세전사의 투구모양의 등대가 보인다. 오른쪽 해파랑길 붉은 표식이 친절한 안내원처럼 양옆으로 서 있다.

연동마을 횃불등대
망설이지 않고 돌계단을 내려선다. 바다가 거울처럼 맑다. 파도에 몽돌 구르는 소리가 또르르- 챠르르-또르르르- 챠르르르 들리는 원시의 바다. 오래 머물고 싶은 아주 조용한 곳이다. 바다를 앞에 둔 카페에서 빠져나온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유리창 안의 저 사람들. 친구일까, 연인일까, 금슬 좋은 부부일까.

발아래 연분홍 갯메꽃이 피어 바닷가 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차를 타고 곧장 연동마을로 갔다간 놓치기 쉬운 숨어있는 비경이다.

다시 나무 계단을 넘어 가면 연동포구다. 한가로운 해안선을 따라 사방에 메꽃이다. 연동마을이 다 환하다. 나는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른다. 좀 전에 본 그 투구모양 등대다. 가까이서 보니 그 모습이 아니다. 흔히 봐왔던 등대와는 색깔도 모양도 다르다.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고 싶다.

두원리에서 올려다본 풍력발전기
주민들은 횃불등대라 하기도 하고 전통 장식기와를 형상화한 치미 모양 등대라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또 횃불을 켜 든 듯도 하다.

어두운 밤에 보면 횃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으로 보일까, 상상을 하며 둘러보는 눈앞에 ‘연동바다놀이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라나비, 스노클링, 하늘다리…’ 매표소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늘은 휴무입니다’ 고딕체의 알림장만 나와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코스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 글·사진 이순화 시인
두원리에서 올려다본 산릉선 위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위용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한 뼘 길이의 플라스틱 바람개비를 들고 학교 마당을 뛰어다니던 그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거대한 풍력발전기 앞에서 나는 점점 작아져서 유년으로 돌아간다. 돌아보는 것들은 아쉽고 또 아쉬워서 다 그리움으로 남아 또 돌아보게 하는 것일까.

오늘 내가 걸어온 길, 가물거리는 멀리 척사길에서 가까이 두원리까지 피사체를 당겨 찰칵. 부드러운 해안선, 해파랑길, 31번 국도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뒤를 따르고 있었다.

세상사가 바쁘다 바쁘다 하지만, 척사길에서 두원리까지 한 번쯤 걸어볼 일이다. 걷다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마음이 돌아봐 주지 않을까.

▲ 갯메꽃
■ 메꽃의 전설

메꽃에는 어느 병사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아주 먼 옛날에 충성스러운 병사 하나가 있었다. 이 병사의 임무는 척후병이나 돌격부대, 장군의 주력부대와의 연락을 책임지며 길 안내를 지고 있었다.

어느 날 돌격부대가 적진을 돌파하고 다음 목적지로 진격하는데, 이 병사는 갈림길에서 장군과 주력부대가 오기를 기다리다 후퇴하는 적군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다.

적군은 주력부대의 방향을 돌격부대와 반대방향으로 유인하기 위해 병사가 표시해둔 방향 표지판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장군은 이 사실도 모르고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격하려다 발밑에 나팔모양의 꽃이 무언가 호소하듯 간절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것을 본다. 주위에는 선혈이 낭자하다.

나팔같이 생긴 꽃은 죽은 병사의 나팔이 꽃으로 화한 것이라 직감한 장군은 반대방향으로 전진하라 명령을 하고 대승을 거둔다.

이후부터 메꽃의 꽃말은 죽어서도 충성을 다하는 병사의 넋을 기리는 뜻에서 충성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조현석 기자

    • 조현석 기자
  • 뉴미디어국장 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등 미디어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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