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는 살아서 잊는다
잊어서 아직도 내일이 다가온다

낯선 내가 깨어나면 밤사이
어떤 밀도를 지나왔는지 알 수 없다

별빛이 무수한 꿈들에 닿을 때
아득하게 가라앉아 있는 심연 아래
누구에게나 떠오르지 않는 슬픔이 있다

다만 습관처럼 밤을 기다렸고
사소하게 눈을 감아왔다는 것
별은 그 안에서 일생을 밝힌다

어느 미지에 불현 듯 몸을 빌려
깨어난다 해도 이 밤을 각오해야 한다

밤하늘이 세포로 촘촘하여
꿈은 내내 나를 여행하다

이 밤에 잠시 머무는 생각





감상) 어떤 날은 산 몇 개를 넘었다는 생각., 어떤 날은 강 몇 개를 헤엄쳐 건넜다는 생각. 꿈속에서 울었는데 눈이 퉁퉁 부은 날 아침. 나는 꿈은 환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낮 동안 살지 못한 내가 어떻게든 살고 왔다는 생각. 그러니까 낮에는 끝내 하지 못한 나를 밤이 하게 해 주었다는 생각.(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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