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에 목숨 걸고 나라 지킨 '김천경찰 희생·얼' 잊지 말아야

김천경찰서 현충시설 참배(김천경찰서 제공)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희생한 김천 경찰의 활약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영수 김천경찰서장은 장소가 협소하고 낙후된 전몰 경찰관 충혼비 재건립과 추모공원 조성 등 ‘김천 경찰 얼 찾기’에 나서기로 했다.

6.25 전쟁 당시 김천 경찰의 활약상과 희생은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된 증산면 경찰충혼비와 6·25 전쟁 유적지인 부항면 사등리 김천 부항 지서 망루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중 부항 지서 망루는 칠곡 왜관철교 등의 5곳과 함께 6·25 전쟁 관련 문화재로 공식 등록된 6곳 중의 하나로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김천경찰서와 김천 경찰행정발전위원회는 지난 9일 두 곳의 현충시설을 참배해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경찰관들의 넋을 위로했다.

참배에는 김영수 김천경찰서장과 직원, 이기양 김천 경찰행정 발전위원장 및 회원, 경우회, 생활안전협의회, 보안협력위원회, 자율방범대, 녹색·모범·의경어머니회 등 경찰협업단체장 등이 참석했다.

김영수 서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유가족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증산면 경찰충혼비에 새겨진 명단(김천경찰서 제공)
△증산면 경찰충혼비

6·25전쟁 당시 김천을 점령했던 공산군은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패퇴하기 시작해 산악지대로 숨어들었다.

그 가운데 불꽃사단이라 부르는 공산군 3천여 명이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에 주둔하면서, 면 소재지에 있던 국군 제877 경비대와 잦은 전투를 벌였다.

1950년 10월 24일 자정 불꽃사단 일부가 증산 지서를 습격해 이기섭 경위를 비롯한 경찰관 6명을, 같은 해 11월 18일에는 경찰관 2명을 사살하고 도주했다.

이후 증산 지역에 주둔한 공산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벌인 국군과 경찰은 1950년 11월 24일 국군 제877대대와 경상북도 특경대원, 의용 경찰 대원, 지방 자체 특공 대원 등 200명이 합동으로 수도산에 은거한 공산군의 아지트를 공격했다.

증산면 경찰충혼비(김천경찰서 제공)
이 전투에서 공산군 80명을 사살, 13명을 생포했으나, 국군과 경찰 50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보았다.

1951년 2월과 7월 14일 불꽃사단이 증산 지서를 재차 공격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청년단원 등 120여 명은 격렬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 전투에서 공산군의 피해도 컸으나 당시 임시 면사무소로 사용 중이던 쌍계사가 불타 소실됐으며, 공산군은 계속되는 국군과 경찰의 토벌 작전, 보급품 부족과 혹독한 겨울이 겹치면서 패퇴했다.

1995년 5월 27일 전사자인 김수암 순경의 동생 등 유족들과 경찰, 지역 유지 등 22명이 450만 원의 기금을 조성해 증산파출소에 충혼비를 건립했다.

충혼비에는 경찰관 13명, 귀순자 1명, 수색대 8명 등 22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충혼비 건립 후 유족들과 경우회에서 자발적으로 관리를 해왔으며, 김천경찰서는 수차례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지정을 요청해 2015년 5월 14일 지정됐다.

김천 부항지서 망루(김천경찰서 제공)


△김천 부항 지서 망루

1948년 12월부터 김천시 부항면 일대에 공비들이 출몰해 지서를 습격하고 마을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자 부항 면민들이 부항 지서를 빨치산에 대항하는 지휘소로서 진지를 구축하기로 결의하고 건립했다,

1949년 4월부터 5월까지 2개월간 콘크리트 망루와 지서에서 망루를 연결하는 터널, 적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나무울타리를 견고하게 구축했으며, 6.25 전쟁 기간에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도주로가 차단된 북한군들이 백두대간에서 활동하던 빨치산과 합류해 1천여 명 규모의 불꽃사단을 조직해 아군 군·경과 치열한 교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부항 면민들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별동대(60여 명)를 창설해 2차에 걸친 북한군의 부항 지서 공격을 물리치고 삼도봉 일대에 은신하고 있는 다수의 북한군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특히 1951년 10월 20일로부터 21일까지 1천여 명의 적이 막강한 화력으로 공격한 2차 전투에서 경찰관 1명과 청년단원 4명이 전사하고 다수가 총상을 당했으며 망루의 지붕이 소실되는 피해를 봤으나 끝까지 지서와 망루를 지켜낸 역사의 현장이다.

김천시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역주민과 경찰이 함께 힘을 합쳐 자발적으로 망루를 건립하고, 목숨을 바쳐 지켜낸 부항 망루가 호국의 성지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억 원의 예산을 들여 부항 지서 망루를 복원했다.

부항 지서 망루는 6·25전쟁 때 세워진 망루로는 유일하게 4각형으로 축조된 콘크리트 건축물로. 크기는 높이 7m, 하단부 너비 3.7m, 상단부 너비 3.1m이며, 약 20m 떨어진 부항 지서와 연결된 지하통로도 갖추었다.

축조 당시의 양철지붕과 종, 사이렌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아 부항파출소 옆에 방치돼 있다가 2008년 10월 1일 칠곡 왜관철교 등지의 5곳과 더불어 6·25전쟁 관련 유적지로는 처음으로 문화재로 지정됐다.

6·25 전쟁 때 경찰이 운영한 망루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적이며, 이 지역에서의 민·경 합동 전투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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