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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도 세명기독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공지능의 발전이 두려울 정도로 빠른 것 같다.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이젠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어 점점 신의 경지에 근접하고 있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꺾은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 (AlphaGo)가 얼마 전 인간 바둑의 최강자 커제를 상대로 한 대국에서는 쉽게 3연승을 거두면서 ‘바둑의 신’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알파고는 더 이상 상대할 인간이 없기에 바둑계에서 은퇴한다고 한다.

IBM의 또 다른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의학의 암 치료 분야에서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방대한 의학 논문과 자료를 분석해서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단 몇 초 만에 제시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한계를 능가하는 의료적 의사결정 능력으로 인해서 왓슨을 도입하려는 병원들이 국내에서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왓슨의 진화가 거듭될수록 암 치료의 권위자들마저 자존심을 구긴 채 자신이 생각하는 진단과 치료법이 적절하고 합리적인지를 왓슨에게 물어보고 컨펌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는 신탁(oracle)과 매우 흡사하다. 고대 사회에서 사제를 통해 신의 뜻을 묻고 중요한 결정을 내렸던 것처럼 의학 분야에서도 신적인 위치에 오른 인공지능이 어떤 처방을 내리면 인간 의료진들은 그 결정에 따라서 피동적으로 치료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비단 신체의학만이 아니라 정신의학 분야에서도 인공지능 치료사의 계발이 진행되고 있다. 남가주 대학의 연구팀이 만들어낸 엘리(Ellie)가 한 가지 예다. 엘리는 사람의 표정과 언어 패턴, 전반적인 신체의 움직임과 같은 막대한 데이터를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우울증이나 불안증 등의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가령 우울한 사람에게서는 웃는 표정이 적고 목소리가 힘이 없는 것을 감지하고, 불안한 사람에게서는 불필요한 손동작이 많은 것을 알아차려서 그것으로 진단의 근거를 만들어간다. 단지 인간의 모습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리 상태를 더 파악하기 위해 환자가 느끼는 기분은 어떤지, 밤에 잠은 잘 자는지 등을 묻고 그 대답을 분석한다. 또 화면상의 캐릭터 치료사는 환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거나 표정이나 목소리 톤을 바꾸기도 하는 등 제법 실제 치료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단지 기계인 인공지능 상담사에게 자기 마음을 열어 보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엘리를 통해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사람들이 실제의 인간 상담사보다도 인공지능 상담사에게 더 진지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고백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고민이나 문제를 친구나 지인들에게 물어서 해답을 얻기보다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서 비밀스럽게 찾는 것이 더 쉽고 안전하다는 사실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도덕이나 윤리로 판단하지만, 기계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공지능 치료사와의 상담에서 만족도가 높게 나오는 이유로 제시됐다. 앞으로 수년 내에 이 인공지능 치료 프로그램이 눈부시게 발전해서 사람의 제반 심리적 문제나 정신질환들에 대해 두루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면 현재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기계와 더불어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의료의 보조자로 사용할 것인가. 기계는 점점 인간적으로 되어 가는데 현재 의료 시스템은 여전히 기계적인 모순의 상황에서 결국 누가 사람의 마음을 차지할 것이냐가 관건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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