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 부임한 최석은 아전들을 불러모아 지시했다. “백성이 있어야 사또가 있고, 아전도 있다. 백성을 가족같이 생각하고 억압하거나 금품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나의 시정방침을 어길 시에는 엄한 벌로 다스리겠다” 참으로 오랜만에 주민들은 최석이 펼친 선정으로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었다. 최석이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내직으로 승진, 순천을 떠나게 됐다. 마을 사람들이 갖가지 귀한 선물을 마련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사또가 8필의 말을 가져가게 돼 있는 관행도 철폐했다. 최석은 순천을 떠날 때 자신이 부임하면서 타고 온 말을 타고 개성을 떠났다.
순천 주민들은 ‘팔마관행’을 타파한 최석을 기리기 위해 ‘팔마비(八馬碑)’를 세웠다. 순천 주민을 더욱 감동 시킨 것은 최석이 순천을 떠난 뒤 일어난 최석의 선행이었다. 개경으로 간 지 몇 달 후 최석의 서신과 함께 망아지 한 마리가 순천에 보내졌다. “이 망아지는 어미 말의 뱃속에 있을 때 어미 말이 순천 땅 풀을 뜯어먹고 자란 것이니 순천이 망아지 주인이다”라고 편지에 쓰여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우리 관료들 중 최석을 닮은 후예들이 더러 있었다. 특히 법조계의 판사들 중 ‘딸깍발이 판사’ 조무제 전 대법관, ‘청빈 판사의 전설’ 김홍섭 판사 등은 청빈을 생명처럼 중히 여겨 지금도 사람들의 숭앙을 받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2017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 경북도와 대구시의 청렴도가 전국에서 꼴찌 수준으로 나타나 선비고장의 체면을 구겼다. ‘팔마비’로 기리는 최석의 공직자의식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