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 추운 겨울에 비해 따뜻한 봄, 시원한 가을은 빨리 보내고 싶지 않은 아쉬움 때문인지 왠지 짧게만 느껴진다. 긴 겨울을 앞둔 늦가을의 하루하루는 아깝고 아쉽다.‘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 가을은 독서의 계절’ 등 가을을 규정하는 말들이 많은 이유는 짧다는 아쉬움의 표현일 것이다. 굳이 가을을 규정하는 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11월이 남기고 갈 마지막 가을 풍경의 끝자락을 잡기 위해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의 얼음골과 주산지리의 주산지, 절골 투어에 최인서 청송군 문화관광해설
역사와 현대가 잘 어우러져 있어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마을이 있다.포항 북구 기계면 봉계리다.봉좌산(鳳座山·626m) 자락에 위치해 있는 봉계리는 침엽수림지인 덕계숲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곳곳에는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옛 선조들의 지혜와 정신이 깃들어 있다.또, 마을에는 자연을 벗 삼아 농촌·도자기·승마·캠핑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봉계리는 1리와 2리로 나눠져 있는데 동네마다 유서 깊은 고택들이 있다.대표적으로 봉계 1리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는 ‘분옥정’
남간마을은 노천박물관이라 일컫는 경주 남산 서쪽 자락의 고요한 시골 마을이다. 이 마을은 문화유적과 그 속에서 주민이 더불어 공존하고 있는 명품마을이다. 남산 밑의 작은 마을이지만, 천년고도 그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문화재가 산재한 유서 깊고 품위 있는 마을인 것이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지 ‘나정’과 신라 6부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육부전’이 있는 이 마을은 신라 역사가 처음 열린 곳으로도 불린다. 현재는 50여 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농사와 축산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다, 하지만, 보물 2점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 녹색농촌체험마을’(낫질로 561-5)은 옥담·음지마·낫골 등 세 개의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고령 제일의 오지로 오염되지 않은 산과 물이 있다.맑은 물, 깨끗한 자연에서 재배한 무농약 쌀은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미숭산 기슭에 자리 잡아 산림에서 나오는 산나물과 송이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또한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농촌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신리 녹색농촌체험마을‘은 신리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농촌 문화, 농사 체험을 관광 상품화하려는 목적으로 조성됐다. 도시민들이 휴양은 물론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마을은 참외·복숭아·자두·사과·배 등 과수가 풍부하다. 기산면은 칠곡군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왜관읍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성주군 선남면과 만나면서 도고산이 솟아있다. 서쪽에는 성주군 월항면 달암티·박집산·지경산이 차례로 북으로 이어지면서 성주군 월항면과 접한다. 북쪽으로는 서진산·비룡산·배석이재·봉산 등이 차례로 동쪽으로 이어지면서 약목면과 접하고 있다. 서진산에서 발원한 서원천이 면 중앙을 동서로 지나 평야가 형성돼 낙동강으로 흐르고 있다. 하천 및 낙동강 연안 비옥한 농경지에서
완연한 가을인 9월. 충의(忠義)의 마을 영천시 화남면 금호리 마을을 찾았다.이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승리를 기록한 한천승첩지(漢川勝捷地)로 유명하다.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 동래성을 침입해 4월 22일 영천성이 함락되자 같은 달 27일 지역의 수 많은 지사(志士)들이 도탄에 빠진 백성과 나라를 구하고자 창의기병(倡義起兵)해 5월 6일 이곳 한천 일대를 중심으로 전투를 전개해 최초의 승리를 기록했다. 금호리는 바람이 불면 강변의 갈대밭에서 비파 소리가 나고 호수처럼 물이 잔잔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학루산(鶴樓山
봄·여름·가을·겨울, 철마다 새로운 빛깔로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향기를 뿌리고 나들이 가는 처녀의 설렘을 간직한 고장 부남면 구천리는 ‘동양의 피카소’라 불리는 남관 화백이 태어난 곳이다. 그가 태어나고 묻힌 곳을 따라가다 보면 물과 산, 들이 어우러져 자연이 만드는 섭리가 미치지 않는 골이 없다. 구천(九川)이라는 지명은 한자로 아홉 구와 내 천 자를 쓴다. 이 골짝 저 골짝 물이 구천리에서 만나 아홉 구자 형태로 마을을 감싸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양쪽에서 흐르는 천이 아홉 구 자로 마을을 감싸고 있어 가뭄이 들지 않는
울릉도에서도 손꼽히는 중심 마을이 있다. 울릉도 입도 관문인 도동항을 중심으로 1903년 이래 울릉군의 행정 중심지로 발전한 도동마을이다. 도동마을은 천혜의 자연항을 끼고 일찍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도방청(道方廳)이 세워졌으며 지금의 도동(道洞)이라는 지명도 이 도방청의 첫 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행정구역상 울릉군 울릉읍에 속해 있으며 도동1·2·3리로 통상 도동1리와 2리를 도동마을이라 불리며 인구 밀도가 가장 높다. 울릉도 중심지답게 마을 곳곳에는 울릉군청을 비롯한 주요 공공기관이 자리 잡고 관광 명소와 숙박 및
마을 앞으로는 길안천 맑은 물이 흐르고 나지막한 산이 등 뒤에서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금소마을은 배산임수라는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안동시에서 남동쪽으로 14㎞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마을은 예천임씨, 울진임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 곳곳에 유물유적과 문집 등 전통문화가 남아있다. 예천임씨(醴泉林氏) 집성촌인 임하면 금소리는 마을 앞들에 흐르는 물길이 비단 폭을 펼친 듯 아름답다 해서 처음에 ‘금수(錦水)’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을 안산인 비봉산 아래의 오동소(梧桐沼)
경산시는 경상북도 남부 중앙에 있으며, 자인면은 경산시의 중앙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서·남부에 금호강과 만나는 오목천이 흐르고 있으며, 넓은 평야로 이어지는 북서부를 제외하고는 삼락산, 도천산, 금학산 등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자인면은 원효성사의 탄생지로 유명하며 계정들소리, 여원무 등 토속문화가 전승되고 있는 문화의 고장이다. 수원이 풍부하여 과수, 채소 재배가 활발하며 복숭아와 대추, 한우 등이 널리 알려져 있어 대구 근교에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경북 경산시 시내에서 벗어나 919번 지방도를 따라 10여 ㎞
영양 읍내에서 일월면 방향으로 31번 국도를 타고 영양 시가지를 벗어나면 영양읍 삼지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를 보고 3㎞쯤 가면 삼지리마을이 나온다. 삼지(三池)는 ‘못이 세 곳 있다’는 의미로 영양읍 삼지리 뒷산인 옥산을 중심으로 주위에 간지, 연지, 항지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은 옛날에 반변천이 돌아 흐르던 곳으로 옛날 큰 홍수로 하원리 옥선대 앞 산맥이 끊어져 물길이 바뀌고, 그곳에 전형적인 우각호가 형성되면서 훗날 주민들이 이를 이용해 저수지를 만든 것으로서, 지금도 삼지 부근 논에 관정을 만들기 위해 깊이 파보
문경은 수도권에서 영남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한강 연안과 낙동강 연안을 따라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가장 짧은 노선이라 1905년 1월 1일 경부선철도가 개통되기 이전까지 가장 번화한 관문이었다. 말(馬)에 의해 이뤄졌던 교통수단이 철마(鐵馬)라는 기차로 대체되고, 자동차가 출현해 발전하면서 경부선축이 지금처럼 됐다. 그 이전 걷거나 말 타고 다닐 때 경부선 중심축이었던 문경새재는 120여 년을 고요한 아침의 골짜기로 잠자고 있었다. 조선통신사가 넘나들었고, 왜적의 침략통로여서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던 이 길과 관문이 그렇게 퇴락
굽이굽이 산을 넘으면 무릉도원이 나타난다.하늘 높이 솟은 산자락에 한적히 자리 잡은 ‘원곡마을(원곡동)’은 전형적인 산촌이다.주민 대부분이 산나물과 인삼 등을 재배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슬로 시티로 불린다.울진군 금강송면 원곡리 원곡마을은 울진읍에서 차를 타고 가면 40분가량 걸린다.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불영계곡을 따라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감상하면서 봉화 방면으로 한참을 가다 보면 광회 2리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인다.이정표를 따라 비좁은 급경사를 오르고 또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이곳이 원곡마
예천군을 ‘충효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충(忠)은 신구차 상소문을 올려 이순신을 구한 약포 정탁 대감과 효(孝)는 명심보감 속편에 실린 효자 야계 도시복(1817~1891)을 뜻한다. 효를 상징하는 효자 면을 체험하고 스토리가 있는 곳을 찾아가 본다. 효자면은 예천군의 북부에 있으며 동쪽은 영주시, 남쪽은 은풍면·용문면, 서쪽은 문경시, 북쪽은 충청북도 단양군과 접한다. 개발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며 산세의 멋을 그대로 관광자원으로 활용 한 곳이다. 대체로 소백산맥 및 그 지맥으로 이루어져 해발고도 200m 이하의 평탄지는 없다. 북서
봉화군 물야면 오록마을은 조용하고 단아한 시골마을이다. 황토색 논두렁이 마을로 이어지고 길 끝에는 기와집이 자리한다. 기와지붕 아래에는 돌담이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는데 기와지붕, 돌담 하나에도 오랜 세월의 정취가 물씬 풍겨 나온다. 상서로운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날아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오록마을’. 마을 입구에서 바라보는 오록마을의 풍경은 마치 살아있는 민속촌에 온 것처럼 인상적이다. 한옥 대다수가 마을 전면에 자리하고 있어 언뜻 동네 전체가 전통가옥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옹기종기 들어선 고택과 정자, 사당은 한 폭의 그림
영주시 풍기읍은 소백산맥의 주봉인 비로봉(毘盧峰·1439.5m)과 연화봉(蓮花峰·1394m), 죽령으로 이어지는 소백산 병풍이 둘러싸여 도솔봉(兜率峰·1314m)에서 발원한 죽령계곡, 연화봉에서 발원한 남원천, 비로봉과 연화봉에서 발원한 금계천이 흐른다. 북으로는 산림자원이 풍부하고, 남으로는 농경지와 과수원이 있고, 금계천 주변 경관은 소나무와 함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정감록에서 꼽은 십승지(十勝地) 10곳 중 그 첫째, ‘소백산 두 물 사이에 있는 풍기의 수리바위’가 있는 금계마을을 소개한다. △풍기 금계동의 ‘금계바위’.
△ 6·25 아물지 않는 상처-형곡동 미군 폭격기 오폭사건.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과 반공과 세계의 냉전적 갈등으로 폭발한 6·25 전쟁은 한반도에 수많은 상흔을 남겼다.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도선과 동해안 연선(沿線) 등 11개소에서 경계를 넘어 38선 이남으로 선전포고도 없이 남침, 무방비 상태였던 중부지방과 호남지방을 삽시간에 휩쓸었다.인민군의 대공세에 유엔은 미국을 주축으로 바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82호를 의결하고 이 전쟁에서 한국을 원조하기로 결정하고 하고 7월 7일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경북 청도군 화양읍 신봉리는 청도지역에서 처음으로 복숭아를 재배한 곳이다.신봉리는 홍도·신기·노봉·비석리 등 4개 자연부락이 복숭아, 청도 반시, 자두 등 농업을 주 소득원으로 옹기종기 화목하게 살고 있다.오산지 속편에 의하면 홍도·신기·노봉이 합쳐 신봉리가 됐다고 한다. 면적은 146만1718㎢이고 93세대( 남자 73명 여자 83명) 15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신봉리는 동쪽으로 교촌리, 서쪽은 각남면 칠성리, 북쪽으로는 서상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청도 읍성 내의 서상리나 동상리 주민들과는 다르게 집성촌을 이루고 아직까지 전
“지난 400여 년 동안 동네의 안녕과 상주시의 평화 및 출향 인사의 건승을 기원해 온 성황제가 지방문화재로 등재돼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속인의 전설 이야기로 전해오는 상주시 천봉산 성황사 ‘남매 전설 이야기’와 함께 일찍부터 성황신을 숭배하던 ‘성황제’(고려 시대부터 추정)의 역사에 관해 설명하는 황국남(80) 대한노인회 상주시지회 부회장의 바람이다. 경북 상주시에서 문경 방향으로 3번 국도를 따라 북천을 건너면 상주 3악(천봉산·갑장산·노음산)의 하나인 천봉산이 서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풍수 지리적으로 상주시의 안산이
한반도 남부의 중앙에 있는 김천은 예부터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접경에 위치한 지리적 입지로 인해 일찍이 교통이 발달했다. 김천 중에서도 남산동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일찍이 역이 설치되고 1905년 경부선철도 부설되기 전까지 역사 주변에 시장, 역촌 등이 형성돼 김천의 중심지로 부상했다가 후일 급격하게 쇠퇴했다. 남산동은 조선 시대 말까지 인마(人馬)의 왕래가 가장 활발했던 김천지방 최대의 번화가로 근대도시의 틀을 가장 먼저 갖춘 지역이었으나 근대화와 재래시장 위축, 전국적인 도로망 구축, 김천시청을 비롯한 관공서의 외곽지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