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어른들'은 극히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는, 초등학교 3학년 사회교과서 포항편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는, 2009년도까지만 해도 전국 단위의 초등교 국어 교과서에 줄곧 실려 있었다. 그것이 어째서 이때에 갑자기 전국 단위 교과서에서 탈락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가 우리 역사책에 보이는 최초의 한일 관계 기록임을 생각할 때,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오랑
동해를 향한 일본 항구도시 후쿠이켄(福井縣) 츠르가시(敦賀市)의 케히신사(氣比神社)는, 케히대신(氣比大神)이란 정체 불명의 신을 받들고 있다. 후쿠이켄 으뜸의 신사다. '케히'란, '긴 칼'을 가리킨 우리 옛말 '기 비'의 일본식 발음이다. 따라서 이 신사가 받들고 있는 신은, 일찍이 긴 칼 즉 대도(大刀)를 만든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간 일본학자들은, 이 신사가 받들어 온 신을 연오랑일 것이라 짐작해 왔었는데, 그 짐작이 맞아든 셈이다. 연오랑은, 포항에 있을 때부터 긴 칼을 만든 단야장(鍛冶匠)이었기 때문...
연오랑은, 일본 갈 때 여러가지 보물과 장비를 가지고 갔다. 일본의 고대 역사서 '일본서기'(서기 720년 편찬)에 의하면, 연오랑이 일본에 가지고 간 물건은 일곱가지다. 한편 '고사기'(서기 712년 편찬)는, 여덟가지라 기록하고 있다. 모두 '보물'이라 치부되고 있는 이들 물건은,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경우 그 내용이 사뭇 달라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고사기'는, 바다를 항해하는 중 기도 드릴 때 쓰이는 물건인 '비례(比禮)' 4종, 옥구슬 2관(貫·두줄의 뜻인듯) 외에 거울 2장 등 모두 여덟가지인...
놀라운 일이 있다. 연오랑은, '빛깔'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화학(化學)적 방법에 의해 납(鉛)에서 물감을 추출해내어, 토기(土器)나 건물에 빛깔을 칠했던 것이다. 2세기의 옛날에, 그것은 생각할 수 없는 획기적인 예술 행위였다. 고구려의 화가승(畵家僧) 담징(曇徵·579~631)은 유화(油畵)에 능했다. 그가 만든 안료(顔料·그림물감)는 유명하다. 납을 빨갛게 달군 다음 천천히 식히면 고운 물감이 생겨난다. 갑자기 식힌 것은 연노랑 빛깔의 물감으로 은밀타(銀密陀), 천천히 식힌 것은 붉은 노랑색 물감으...
연오랑은 자상하게 서민을 보살핀 지도자였다. 그 한가지 보기로 '고리버들상자 만들기'를 들 수 있다. 그가 일본서 최초로 개발한 지역의 하나인, 지금의 효고켄(兵庫縣) 토요오카시(豊岡市) 일대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연오랑은, 그 곳 마루야마(丸山)강 강변 일대에 우거진 고리버들 가지로 상자 엮는 법을 창안, 널리 보급시켰다 한다. 옷이나 도시락 간수용으로 긴히 쓰인 그 상자는, '고리'란 이름으로 그 후 일본 각지에 널리 전해지며 인기를 모았다. 옷상자를 '코오리(こおり)'라 부르는 일본말...
포항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의 항구 고장에는, '밥식혜'라는 저장 반찬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오랜 전통 찬이다. 홋대기, 도루묵 등 잔 물고기의 내장을 도려내어 잘게 썰어 소금에 버무려 삭혀뒀다가, 밥과 생무우 썬 것을 양념으로 버무려, 삭혀서 먹는 저장 찬이다. 고추가루로 버무린 밥식혜는 현대에 와서 만들게 된 것으로, 원래는 고추가루를 쓰지 않았다. 요즘도, 제사상에 올리는 밥식혜는 고추가루로 버무리지 않고 하얀 채로 쓴다. 이것이 전통 밥식혜임을 알 수 있다. 이 전통 방식으로 담은 우리의 '밥식혜'가 일본...
제철소를 다스리던 여인으로부터 그녀의 딸을 넘겨 받은 사나이는, 그 제철소 소속의 일꾼이었고 세오녀의 친아버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세오녀의 어머니인 지체 높은 여인이 일본으로 떠나며, 아무한테나 딸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책인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세오녀 어머니는 '낮잠 중에 반란사건(겁탈당했음을 뜻하기도)'을 겪었고, '그때 태양에 무지개가 꽂혔다'고 한다. '태양에 무지개가 꽂혔다'거나, '무지개처럼 빛난 태양'이란 표현은 '왕이 반란 겪음'을 뜻하는, 고대식 역사 글발이다. 낮잠 자고 ...
세오녀 탄생에 얽힌 비밀을 풀어보자. 우선 신라의 '아구느마'라는 늪 이름 풀이부터 ― '아'는 우리 고대어 '알'의 준말이다. 일본인들은, 우리말을 할 때 흔히 받침을 생략하여 발음한다. 받침은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발음하면 '알'은 '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알'이란, 사철을 가리키는 우리 고대어였다. 따라서 '아구느마'의 '아'는 사철을 뜻한 말임을 알 수 있다. '구'도 '굽'이라는 우리말의 준말이다. '굽다'의 어간(語幹)임을 알 수 있다. '느'는 '늪'의 준말. ...
일본 역사 책을 통해 세오녀의 신원(身元)을 캐보자. 우리나라 역사 책에 전혀 밝혀져 있지 않는 부분이, 일본 쪽 문헌에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연오랑이 '신라왕자'였음을 일러준 것도 '일본서기'였다. 일본의 또 하나의 고대사 책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세오녀는 신라를 떠나며, '부모의 나라에 간다'고 했다 한다. 그리고는 일본으로 갔다. '부모의 나라'가 일본이라는 이야기다. 세오녀가 최초로 간 곳은 일본 큐슈(九州)의 이토지마(島島)반도로 확인된다. 큐슈 북단에 위치하는 이토지마반도 일대는, 당시 ...
세오녀는 일본에 가서 '히메고소(比賣語曾)'라 불렸다. '히메'는 한자로 '희(姬)'라 쓰여지기도 한다. '귀한 여인', '신분이 아주 높은 여왕급의 여성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한편, '고소'는 '왕호'를 뜻한 우리 옛말 '거세' '거소'가 일본화된 낱말이다. 고대의 경우, 강변에 쌓인 사철(砂鐵)을 거두어들이는 권리는 임금에게만 있었다. 사철은 철기를 만드는 원자재였다. 따라서 임금은, '무쇠 거두는 이'의 뜻으로 '거세거소'라 불리기도 했는데, 신라 초대왕 박혁거세 이름 중의 '거세'가 바로 이것이다. 박(...
연오랑은 일본에 가서 그 곳 명문가 태씨(太氏)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되어 있다. 7세기의 일본 정계(政界)를 주름잡은 제철(製鐵) 대호족(大豪族) 오오노오미홈치(多臣品治)의 조상이 되는 여인이다. 대(大)씨와 태(太)씨, 다(多)씨는 모두 한 집안이었다. 고구려계 예(濊) 사람이었던 것이다. 고구려의 명맥을 이어 발해(渤海)를 세운 대조영(大祚榮)도 대(大)씨였다. 그럼, 세오녀는 일본에 간 후 어떻게 되었을까. 『삼국유사』와 『일본서기』의 연오랑 세오녀 관련 기사 중 가장 두들어지는 차이는 그들 부부...
◇…27년만에 정권 찾은 연오랑 형제 그가 상륙했다는 케히 해수욕장 바닷가 일대는, 애초 진흙 수렁이었다. 큰 바위가, 산에서 내려오는 강물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일창이 만든 칼로 이 큰 바위를 깨부쉈더니 흙탕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비로소 물길이 트여, 마루야마강은 맑은 물이 흐르는 무쇠의 강이 되었다 한다. 이 고장 무쇠산에서 강을 타고 흘러내리는 사철(砂鐵)이, 강변에서 풍부히 캐지게 된 것이다. 강변에서 거두어지는 사철은, 고대제철(古代製鐵)의 긴요한 자원(資源)이었다. 사철을 숯불로 녹혀 강철을 만들어 ...
연오랑의 성은 석(昔)씨. 신라 제4대왕 석탈해(昔脫解)의 손자다. 석탈해의 아들은 구추(仇鄒), 구추의 아들이 연오랑과, 지고(知古) 즉 훗날의 신라 제9대 벌휴(伐休) 왕이다. 석탈해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교포 2세 원조'인 셈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김부식 지음·1145년)' 탈해왕 대목을 보자. 탈해는 본시 다파나국(多波那國)의 출생이다. 왜(倭) 동북 1천리쯤 되는 곳에 있었다. 그 나라 왕이, 여국왕(女國王)의 딸을 데려다 아내를 삼았더니, 아이를 밴지 7년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이 가로되 ...
'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 대목은 교묘한 글발로 엮어져 있다. 사물의 본 뜻은숨기고, 다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씀새를, 문학용어로 '은유법'이라 말한다. 역사적인 진실을 숨기고자 할 때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역사를 더욱 신비롭게 표현하고자 할 때도 이런 방식을 쓰기도 했다.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에 가자, '신라에 햇빛과 달빛이 사라졌다'는 것도, 그들이 일하던 제철공장의 불빛이 꺼진 것을 빗대 표현한 것임을 우리는 앞서 짚을 수 있었다. 그럼 연오랑이 일본 갈 때, '바위'를 타고 갔다는...
우리나라 고대사에 관한 책 '삼국유사(三國遺事·13세기 일연스님 지음)'에는 한국과 일본 간의 최초의 교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연오랑(延烏郞)·세오녀(細烏女)' 대목이 그것이다. ― 제8대 아달라(阿達羅)왕 4년 (서기 157년), 신라에는 햇빛과 달빛이 사라진다. 놀란 임금이 그 까닭을 묻자, 신하들은 '해와 달의 정기(精氣)인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모두 일본에 가버렸기 때문'이라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들 내외를 빨리 신라로 데려와야 될 것이 아니냐는 임금의 성화에, 신하들은 서둘러 일본에 가 신라로 돌아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