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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 20. 고래불해수욕장~후포항

싱싱 수산물에 활력 충전···탁 트인 공원서 셀카 한 장

임수진 작가   |   등록일 2018.01.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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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기산에서 내려다 본 후포항
겨울비가 내린다. 이런 날이 운치는 있지만 도보 여행엔 최악이다. 무엇보다 손이 자유롭지 않다. 목에 건 카메라는 무겁고 우산 때문에 시야는 가린다. 바다는 하얀 막이라도 쳐진 듯 희끄무레하다. 고래불 해수욕장은 병곡면 6개 마을을 배경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진 모래사장은 뜨거웠던 여름날을 추억하며 꿈꾸는 여인처럼 누워 있다.
고래불해수욕장 앞 조각
대형주차장 앞 고래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듯 역동적인 조형물은 인간과 자연은 하나며 고래불의 바람과 물, 태양 등은 모두 채움과 비움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채움’과 ‘비움’ 옆에는 ‘병곡의 노래’ 노래비가 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용머리공원 팔각정이 있고 그 앞에 고래불에 대한 지명 유래가 있다.

목은 이색 선생이 상대산 정상에 올라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 고래가 허공으로 분수를 뿜으며 튀어 올랐다. 진기한 광경에 선생은 ‘고래불이다!’라고 외쳤고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고래불’이다. 불’이 ‘펄‘의 옛말이라니 고래 떼가 묘기를 부릴 만큼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는 계속 추적거렸다. 따뜻한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때마침 건축미가 독특한 메르센트 펜션 앞에 도착했다. 건물 내에 카페가 보여 반색을 했는데 아쉽게도 영업개시 전이다. 다시 보니 건물이 참 예쁘다. 주변 펜션 대부분이 미술관처럼 건축미가 돋보인다. 야외 수영장이 딸 린 펜션 벽면, 천사의 날개가 그려진 포토존에서 두 팔을 벌려본다.
금음리 풀빛 바다
겨울바다를 지키는 갈매기
하벳 리조트 카페서 소망하던 커피의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방금 내린 원두의 진한 향에 아찔한 행복을 느낀다. 인간의 욕망이나 행복은 때때로 이처럼 단순하고 소박하다. 카페인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우중충한 하늘도 떨어지는 비도 쌀쌀한 바람에도 관대해졌다. 바다를 배경으로 일렬로 서 있는 해송을 보자 불현듯 호베마의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이 생각난다. 해조 냄새 맡으며 잠시 시간을 내려놓고 있어도 좋겠다.
백석리 앞바다
백석리 바다는 맑았다. 솔직해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 같다. 가면을 쓰지 않은, 남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당당함 같은 게 느껴진다. 푸른 바다와는 또 다른 맛이다. 이런 걸 풀빛이라고 해야 하나. 초록과 연두를 혼합해 놓은 연한 색깔, 바윗돌의 뿌리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백석1리 마을 앞 해안에 말뚝이 박힌 돌무덤이 보인다. 특이해서 마을 주민을 붙들고 용도를 물었다. 바닷물이 마을로 들이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란다.

이정표에 철암산 화석단지가 보여 방향을 틀었다. 약 1500만 년 전의 굴과 가리비 화석이 자주 발견되는 곳이다. 산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 대부분이 큰 자갈이 박힌 ‘역암‘이다. 정상에 거대한 숲 바위가 있다는데 거기까진 가지 못했다. 둥근 바위에 바다생물인 화석이 군데군데 붙어 있어, 바닷속에 속해 있던 것이 화산폭발 때 지표면으로 솟아올라 산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개구리 바위
해파랑길 따라 여행은 계속된다. 칠보산 이정표가 보이자 별안간 숲의 정기를 맡아보고 싶어진다. 23코스는 비교적 거리가 짧아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어 좋다. 산길에서 개구리 바위를 만났다. 금곡리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섬긴 바위다. 설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옛날, 동네 사람들이 해가 져서 이 길을 지날 때면 여우나 도깨비는 물론 산짐승의 공격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개구리 바위만 지나면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졌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광산업을 하던 타지 사람이 찻길을 내기 위해 개구리 바위를 도끼로 내리친 적이 있었다. 순간, 멀쩡하던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천둥과 함께 비가 쏟아졌고 마을은 홍수가 났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황급히 깨진 바위에 시멘트를 발랐다. 그때의 흔적이 지금도 바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한다.
백암 회센터 주차장
겨울비의 운치가 흠뻑 느껴지는 해파랑길
백암 회 센터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울진대게 모형 조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백년손님에 나오는 후포리 남 서방과 장인 장모가 대게를 앞에 두고 환하게 웃는 홍보용 전광판이 눈길을 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해 삼율1교를 지나니 후포항이 보인다. 이곳에서 국제 요트대회도 열리고 요트학교와 요트교육장도 있다. 독도 가는 여객선도 이곳에서 타면 된다.

40여 년 전만 해도 울진은 멸치어장으로 유명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은멸치가 갯가에 떼를 지어 다녔다. 사람들은 그물을 던져 잡기도 했지만 두 척의 배로 이동하는 멸치 떼를 좇아 그물을 던져 잡는 방식을 취할 때가 더 많았다. 모두 합심해서 그물을 잡아당길 때면 장정들의 검게 탄 팔뚝의 힘줄이 밭고랑처럼 도드라졌다. 이때 부른 ‘그물 당기기’ 노래 역시 대부분의 노동요처럼 천연스럽고 구수하다.

어∼이 날 배야/ 어∼이 날 배야/ 어∼허 날 배야/ 어∼이 조오타/ 어서 많이 돈 벌어 가지고/ 노리야 당겨라/ 에∼이 날배야/ 고향산천에/ 에∼이 날배야/ 마이도 얽끌렸다/ 아이그 빨리 당기자/ 빨리 당겨라

방금 어선에서 내린 오징어
울진붉은 대게 축제
후포항 공판장은 싱싱한 수산물로 활력이 넘친다. 대게를 늘어놓고 경매를 하는 장면을 보고 싶었는데 늦은 오후라 입항한 배에서 내린 것은 오징어와 각종 수산물이다. 네다섯 명의 아주머니가 싱싱한 오징어를 스티로폼 상자에 담고 있다. 날씨는 궂지만, 주말이라 후포항은 손님들로 활기가 넘친다. 울진 대게, 붉은 대게 축제가 봄이 오는 3월1일부터 4일간 열린다. 속이 꽉 찬 울진 대게 축제, 기억해 두었다가 오면 좋겠다. 부둣가 노점 가판대에 큼지막한 대게가 가득이다. 상인과 손님의 흥정이 탱탱하다. 흐리고 질척거리는 날씨쯤이야 이미 관심 밖이다.

등기산과 바다를 잇는 다리
후포리 신석기 유적관
마지막 코스인 등기산에 올랐다. 이곳에서 1983년에 신석기 유적인 집단매장지가 발견되었다. 40여 명 이상의 사람 뼈가 출토되었는데 특이한 건 세골장(洗骨葬)을 했다는 것이다. 세골장이란 사람이 죽으면 바로 묻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 묻는 방식이다. 전시관 내에는 간돌도끼와 원시 생활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등기산 풍경에 빠지다
배가 단단한 것일수록 좋다
등기산은 공원이 참 예쁘다. 우선 시야가 탁 트여 가슴이 시원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노목 한 그루가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누구나 가을 동화 주인공이 될 것 같다.

공원을 내려가 후포항 근처 가게에서 울진 대게 한 마리 쪄먹으면 오늘 하루 제대로 마감하는 것이다. 쟁반에 푸짐하게 담긴 통통한 다리 하나 들어 끝부분을 뚝 잘라 잡아당기면 켜켜이 채워진 쫀득한 대게 살이, 희망처럼 탱탱하게 당겨 올 것이다.


◇여행자를 위한 팁

△주변에 가볼 만 한 곳

임수진.jpg
글·사진=임수진 작가
·멀지 않은 곳에 백암온천이 있다. 물이 아주 좋다.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옛날처럼 복잡하지 않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다. 백암온천은 무색무취한 53℃의 온천수로 칼슘과 불소, 나트륨 등 몸에 유익한 성분이 함유되어 만성 피부염에 특히 탁월하다.

·민속 문화에 관심이 많다면 후포리 등대산 서쪽 하단 구 어시장 뒤편에 있는 서낭당에 가보는 것도 좋다. 별신굿을 하는 시기에 맞춰 오면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자연적으로 용출되는 덕구 온천도 있다. 신경통, 당뇨병, 소화불량에 좋다. 산의 형세가 동해를 굽어보는 매를 닮았다는 응봉산도 있으니 등산 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올 한 해 건강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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